2022년에 빛난 배우들은 명절이 기다려지지 않았을까요. 가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테니까요. 이번 추석이 즐거울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목표를 향해 묵묵하게 달려왔고, 그리고 이뤄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연휴 뒤 시작할 하반기를 우리가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에 관한 메시지도 읽을 수 있습니다.
① 독립영화로 차곡차곡 대표 캐릭터 만든 하윤경
② 악녀에서 착한 손녀로 목표 이뤄낸 오승아
③ 감초에서 주연까지 스펙트럼 넓힌 강기영▶ 11일 공개
④ 10년만에 우뚝 솟은 놀라운 강태오▶ 12일 공개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접 만나보니 티브이(TV)에서 받은 느낌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죠? 저 엄청 털털한데 새침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 성격을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지. 한분 한분 직접 만나 뵐 수도 없고. 하하하.”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오승아가 시원하게 웃었다.
드라마에서 연이어 악역을 맡은 것이 선입견을 준 것일까. 오승아는 아이돌 그룹 레인보우로 데뷔해 2017년 <티브이 소설-그 여자의 바다>(한국방송1·KBS1)에서 주인공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에는 주로 악역을 맡았다. 2018년 <비밀과 거짓말>(문화방송·MBC)에서 ‘신화경’은 ‘인간말종이자 희대의 악역’이고, 2019년 <나쁜 사랑>(문화방송)의 ‘황연수’는 ‘비뚤어진 욕망의 결정체’, 그리고 2021년 <두 번째 남편>(문화방송)의 ‘윤재경’은 ‘열등감을 감추려고 몸부림치는 가여운 여자’다. “(이미지가 굳어질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역할을 잘 표현해내려면 최선을 다해 악해져야 하니,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하하하.” <나쁜 사랑> 이후에는 ‘계속 이렇게 악해져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도 잠시 했다고 한다.
이젠 그런 고민은 털어내도 될 듯하다. ‘악역 오승아’가 ‘착한 손녀 오승아’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 ‘어르신’들한테 의료 봉사하는 <이엔에이>(ENA)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임채무의 낭만닥터>(이하 <낭만닥터>)에 출연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아픈 곳을 살피고, 밝은 에너지로 힘을 주는 ‘악역 오승아’의 의외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어르신들한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미용을 책임지는가 하면, 연휴에는 함께 윷놀이도 했다. 그는 “<낭만닥터>를 하면서 마을 8곳을 다녔는데, 처음에는 ‘무슨 드라마에 나온 그 나쁜애 아니냐’던 어머니들이 함께 하루를 보낸 뒤에는 ‘드라마와 다르게 착하다’고 얘기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취지도 좋고, 제 본래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서 출연했는데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제가 오히려 더 많은 힐링을 받았습니다.”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길 때는 “정신적으로 한층 성장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낭만닥터>에서 오승아는 의사와 함께 병원에 갈 수 없는 어르신들을 방문한다. ‘전북 진안군 새울마을’ 편에 나온 오승아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85살 어르신이 병원을 무서워하게 된 사연을 들으며 손녀처럼 공감하고 안타까워한다. 치료할 때를 놓쳐 등이 굽은 어르신,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두고 일하러 가는 아들 등 다른 회차에서 소개한 이들의 현실도 그는 가슴에 새겼다. “어르신들이 녹화가 끝나고 헤어질 때 있는 것 없는 것 다 챙겨주시려고 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죄송하면서도 감사해요. 프로그램하면서 ‘인간 오승아’로서 살아가는데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배우 오승아’로서의 인생도 더욱 다지게 됐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배우의 길을 걸으면서 그도 화려한 것을 먼저 떠올렸다. 다른 아이돌 출신 배우들처럼 미니시리즈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레드카펫을 꿈꿨다. 문학 작품이 원작인 드라마의 주인공에서 사극으로 잘 걸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아침드라마에서 멈췄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주요 시청 층이 주부인 아침드라마가 낯설 수밖에 없다. “<나쁜 사랑> 이후 고민하면서 8개월 정도를 쉬었어요. 그러다가 주어지는 역할에 감사하며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인생캐릭터를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요.”
아침드라마의 히로인이 된 데는 그의 연기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 “악역도 캐릭터마다 각각의 삶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비슷해 보이는 캐릭터도 차별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악역을 맡으면 먼저 어떻게 하면 더 날카로워 보일까를 연구한다. 외형적으로는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로 강약의 변화를 준다. 아이라이너를 진하게 그리고 눈꼬리를 올리거나 칼 단발을 하는 등 세련되고 강해 보이는 이미지를 구축한다”고 말했다. 눈에 띄어야 하는 장르 특성상 날카로움을 강조하면서도 작품마다 변화를 주는 그의 선택은 영리하다. 연구를 하다 보니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재미도 느껴지나 보다. “<김비서를 부탁해>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고 바라면서도, “악역을 하고 나니 악역이 더 보인다”면서 “최근에는 <이브>의 유선 선배님이 연기한 역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열정도 내비친다.
오승아는 “권선징악이 뚜렷한 아침드라마에서 악역을 많이 맡다 보니, 응징당하는 장면만 모아둬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짤’이 하나 추가될 것 같다. 오는 10월 방영하는 100부작 일일드라마 <태풍의 신부>(한국방송2 월금 저녁 7시50분)에서 악역을 맡아 박하나, 강지섭, 박윤재와 함께 출연한다. <태풍의 신부>는 처절한 복수를 위해 원수의 며느리가 된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는 “그만의 외로움과 아픔을 잘 표현해 공감받는 악역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갈수록 그가 빚는 악역이 궁금해질 것 같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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