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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런던한글학교에서 남북 아이들이 만나 하나를 이루다

등록 2022-08-29 08:00수정 2022-08-29 08:21

다큐영화 ‘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 장정훈 감독
한글학교 개교부터 6년의 기록
“남북 교사와 아이들 섞여있는 곳
1명이라도 더 후원회원 됐으면”
다큐영화 <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의 장정훈 감독이 담은 학교 아이들 모습. 장정훈 감독 제공
다큐영화 <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의 장정훈 감독이 담은 학교 아이들 모습. 장정훈 감독 제공

영국 런던 외곽 뉴몰든 지역은 ‘리틀 코리아’라 불린다. 2만명이나 되는 한국인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그중 북한을 이탈한 새터민이 800~1000명가량 된다. 2000년대 후반 영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으로 인정해 대거 받아들였다. 처음엔 한국에 정착했다가 영국으로 건너간 이들도 많다.

런던에 사는 장정훈 감독은 이곳의 새터민들에 주목했다. “한반도를 벗어나 유럽에 정착한 새터민 집단으로는 1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겠다 싶었죠.”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장 감독이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초 신문기자로 잠깐 일하다 96년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화과에서 영상다큐를 공부해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런던에서 독립피디로 방송 외주제작 일을 주로 하던 그는 2015년께 오롯이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새터민에 관심을 갖던 중 아이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냥 북한 다큐를 하면 우울하고 화나고 과거지향적인 얘기가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학교와 아이들 얘기를 하면 밝고 즐겁고 미래지향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2016년 1월23일 ‘런던한겨레학교’가 개교했다. 2002년 탈북한 최승철씨가 설립을 주도했고, 서울 출신 박종민씨가 취지에 공감해 설립비용을 일부 대며 이사장을 맡았다. 장소는 인근 교회 공간을 빌렸고, 학부모와 한국에서 온 유학생 등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교사로 나섰다. 학비는 무료였다. 학교 운영비가 부족할 때면 학부모들이 벼룩시장에 중고물품을 내다 팔아 보탰다.

다큐영화 &lt;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gt;를 만든 장정훈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다큐영화 <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를 만든 장정훈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장 감독은 개교 준비 단계부터 꾸준히 기록했다. “새터민들은 북에 남은 가족에게 혹시라도 불이익이 갈까봐 카메라를 꺼려요. 피해 다니고 숨어 지내던 사람들이라 의심도 많고요. 방법이 없어요. 늘 곁에 있고 함께 밥 먹고 술 먹으며 신뢰를 쌓는 수밖에요. 몇년을 그렇게 뚝심으로 버티니 신뢰가 생기더군요.” 애초 2년이면 되겠지 했던 촬영 기간이 어느덧 6년을 넘겼다. “선생님과 학부모 다 바뀌는 사이 제가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 됐어요. 그쯤 되니 저를 한 식구처럼 생각하더라고요.”

장 감독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서 남북관계가 보였다고 했다. “누가 와서 때리면 아이들은 같이 맞서고, 맞은 친구를 위로해줘요. 남과 북은 왜 그렇게 못할까요? 물놀이 간 아이들 중 하나가 나무막대기를 짚고 미끄러운 곳을 힘겹게 올라가요. 그러고는 다른 아이가 올라올 수 있도록 나무막대기를 건네요. 이를 보며 ‘경제발전을 이룬 남한이 북한에 나무막대기를 건네주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어요.”

새터민들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건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뜻에서다. 영화에는 최승철씨가 영어는 능숙하지만 한국말을 잘 못하는 두 아들을 혼내는 장면이 나온다. 영국에서 아들 둘을 낳고 키운 장 감독도 크게 공감하는 대목이다. “제 아이들도 영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한국말 잘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죠.”

다큐영화 &lt;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gt;의 장정훈 감독이 담은 학교 아이들 모습. 장정훈 감독 제공
다큐영화 <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의 장정훈 감독이 담은 학교 아이들 모습. 장정훈 감독 제공

장 감독은 올해 초 학교에서 영화 <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 1차 완성본 상영회를 열었다. 학부모들은 “감독님이 이런 얘기를 하려고 우리를 열심히 담았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협조해드릴 걸 그랬네요”라고 했다. “울컥했어요. 이제야 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제 마음을 알아주셨구나 하는 마음에 보람도 느꼈죠. 이제 다큐가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더라도 이분들께 위로가 되고 역사의 기록을 남겼으니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 감독은 지난달 초 아내, 두 아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한국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온 김에 영화 공동체상영회도 다섯차례 열었다. 영화를 보고 1명이라도 더 학교 후원회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하다못해 영국인들이 모여서 한글 배운다고 하면 한국대사관에서 한글학교로 인정하고 지원해준다던데, 런던한겨레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없어요. 그나마 한국 후원회원들의 십시일반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장 감독은 지난 16일 영국으로 돌아갔다. 내년 안에 영화 추가 작업을 마무리하고 영화제 등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는 게 목표다. “런던한겨레학교에는 이제 남북의 교사와 아이들이 다 섞여 있어요. 학교에선 통일이 이뤄진 셈이죠. 영화를 보고 남북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통일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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