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바로 지금이다’ 축제에 출연한 송해 선생의 모습. 사진 추억을파는극장 제공
“김 대표, 내가 후배 희극인들을 위해 무대 공연을 만들고 싶어. 내가 직접 출연료도 주고, 사회도 보고. 특히 악극단 이런 건 내가 전문이잖아. 허허허.”
‘영원한 딴따라’ 송해 선생이 떠난 지 어느덧 50일째. 서울 종로 모두의극장(옛 허리우드극장)을 운영하는 김은주 추억을파는극장 대표는 생전의 선생과 나눴던 이 대화를 잊지 못한다.
그는 때가 되면 후배 희극인들을 위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했다. 사비를 털어 직접 출연료를 주고, 사회도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출연도 하는 정식 공연. 김은주 추억을파는극장 대표와 수년 전부터 만나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눠왔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머잖았는데, 그는 계획조차 알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바로 지난달 8일 고인이 된 ‘영원한 딴따라’ 송해 선생의 이야기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날인 지난달 7일에도 저를 만나 공연에 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니눴어요. 오래도록 생각해온 그 바람이 현실이 될 시점이었는데 갑자기 떠나신 게 너무 안타까워서 선생님이 이런 계획을 갖고 계셨다는 것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뜻을 어떤 방법으로든 이어가고 싶었어요.” 지난 26일 서울 종로 모두의극장(옛 허리우드극장)에서 만난 김은주 대표가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모두의극장에서 열린 ‘송해 49재 추모 공연’은 송해 선생을 기억하는 날이자,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모여 선생의 뜻을 이어나가겠다는 ‘약속의 날’이기도 했다.
2019년 ‘청춘가요제’에 출연한 송해(왼쪽) 선생과 함께한 김은주(오른쪽) 대표. 사진 추억을파는극장 제공
김은주 대표가 기획한 ‘송해 49재 추모 공연’에는 고인과 인연이 깊은 대중문화계 후배 12명이 참가했다. 이상벽, 조영남, 전원주, 김성환, 박일준, 현숙, 배일호, 조항조, 이용식, 심형래. 후배들이 노래와 사연으로 송해 선생과의 추억을 소개할 때마 관객 수백명이 눈물과 웃음으로 함께 추모했다.
공연 현장과 대기실에서 만난 이들이 가장 많이 애석해 한 것은 송해 선생이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던 ‘100살까지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코미디언 이용식은 “47년 전 제가 코미디언 시험을 볼 때 송해 선생이 심사위원이셨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을 꺼냈다. 코미디언 심형래도 “100살까지 산다고 했는데, 살 줄 알았는데, 늘 그때까지는 거뜬하다 하셨는데”라며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018년 서울 탑골공원에서 고인과 가상 전통 혼례식을 올린 인연이 있는 배우 전원주는 무대 위에서 일화를 얘기하다 그만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선생님께 약주 따라드리며 ‘100살까지 건강하세요’ 했다가 혼났던 적이 있어요. ‘몇 년 있다가 죽으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인생 누구나 한번 왔다 가는 건데, 송해 선생님을 생각하면 왜 이렇게 울컥할까요.”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던 가수 현숙은 “저한테 늘 우리 현숙이 결혼할 때 내가 손잡고 갈 때까지 살아야지 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고 가는 건 마음대로 안 되지만”(전원주) 그래도 아쉽고 슬픈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송해 선생은 50~60대에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면서 연예계 데뷔 이후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90대에도 건강한 삶을 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송해 선생은 60대만 되어도 은퇴를 생각해야 했던 후배들에게 “인생은 90대부터”(박일준)라는 걸 보여준 선배이기도 했다.
그렇게 갑자기 떠나지 않았다면 선생이 생전에 기획한 공연이 오늘도 모두의극장에서 막을 올렸을 것이라는 생각도 후배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김 대표의 말대로라면, 송해 선생은 전날까지도 건강했다. 그는 “거의 매일 만났기 때문에 평소 선생의 건강상태를 잘 안다. 전날에도 함께 식사했다. 내일 점심 메뉴를 생각했을 정도로 건강했는데. 욕실에서 미끄러진 게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 그래서 더 사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악극으로 시작했던 선생에게 무대는 그가 가장 자유롭고 빛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모두의극장에서도, 종로의 거리 공연에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공연을 해왔다. 김 대표는, 2부 사회자였던 선생이 1부 사회의 빈 곳을 즉석에서 메워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선생은 그 정도로 무대에 진심이고, 열정적인 ‘예인’이였다.
지난 26일 가수 현숙이 ‘송해 49재 추모 공연’에서 노래하고 있다. 사진 추억을파는극장 제공
김 대표는 “그래서 송해 선생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어가려고 다짐한 뒤 방법도 신중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우선 매주 월요일 모두의극장을 무료 대관하기로 했다. 송해 선생이 사비를 털어 후배들한테 무대를 마련해주려고 했던 것처럼, 대관료 부담을 덜어줘 더 많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공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대관료다. 대관료 문제만 해결되어도 원하는 기획대로 공연을 제작해 콘텐츠 질을 높일 수 있다. 추모 행사에 참여한 후배들도 송해 선생은 후배를 양성하며 양질의 무대를 만드는 일에 힘써온 분이라며 그 뜻을 이어가는 일은 의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관료 대신 사용료 개념으로 10만원을 받는데 이는 어르신 관객들에게 ‘밤새 안녕 매트’(미끄럼 방지 매트)를 제공하는 캠페인에 사용된다. 김 대표는 “고 이주일 선생이 폐암으로 고통받은 모습을 공개하며 흡연율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처럼, 어르신들을 위해 낙상사고 예방을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송해 49재 추모 행사’에서는 관객 약 300명이 5000원 정도씩 기부를 했다. 주최 쪽은 총 87만7천원이 모였다고 27일 밝혔다. ‘밤새 안녕 매트’ 첫 번째 대상자로 선정된 서울 강동구의 임아무개 어르신은 주최 쪽에 “송해 선생의 부고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 낙상사고 예방 캠페인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매트 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지난 26일 코미디언 심형래가 ‘송해 49재 추모 공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추억을파는극장 제공
이날 추모 무대 한쪽에서는 1년 전 송해가 사회를 맡았던 <청춘은 바로 지금이다>(‘청바지’) 축제 영상이 내내 상영되고 있었다. 지금도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면서 불쑥 등장할 것처럼 생생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지만, 송해 선생의 뜻은 후배들의 보호막으로 순조롭게 시작됐다.
지난 2016년 종로 지역축제인 <효자손 대축제>를 준비하면서 송해 선생을 섭외해 처음 인연을 맺은 김 대표는 2019년 ‘청바지’를 공동기획하는 등 고인의 말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했다. 송해 선생이 떠나고 49일 동안 검은색 옷만 입었다는 김 대표는 말했다. “그냥 선생님이 하늘에서 ‘아이구 우리 김 대표가 그래도 내 뜻을 잊지 않고 이어가려고 애쓰는구나’ 하시면 좋겠어요.” 송해를 그리는 사람들이, 그가 남겨둔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