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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천경자와 며느리 맺어준 자유분방한 색채화 명작 ‘가을과 여인’

등록 2022-07-13 08:00수정 2022-08-30 20:34

[작품의 운명] 임직순 1974년작 ‘가을과 여인’
수줍은 시선의 20대 유인숙씨
대학 스승 임 화백 눈에 띄어
천경자에 ‘최고 며느릿감’ 추천
임직순 화백의 작품 <가을과 여인>(1974). 천경자 화백의 며느리 유인숙씨가 모델이 된 작품으로, 유씨의 결혼 전 여대생 시절 모습이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임직순 화백의 작품 <가을과 여인>(1974). 천경자 화백의 며느리 유인숙씨가 모델이 된 작품으로, 유씨의 결혼 전 여대생 시절 모습이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48년 전 그림 속에 남은 20대 여대생의 아리따운 자태는 지금도 변함없이 빛난다. 노랗고 푸르고 붉은 꽃 무리와 수풀에 둘러싸인 채 화가를 보았던 소박하고 수줍은 그의 시선 또한 영원으로 남았다. 어제 본 것처럼 액자 속에서 여인은 주홍빛 시폰 블라우스에 알록달록한 색치마를 입고서 청춘의 생명력을 색채로 발산한다.

지난 5~6월 화랑가의 뜨거운 관심 속에 열렸던 광주시립미술관의 남도 색채화 거장 임직순(1921~1996) 화백의 회고전 ‘색채의 마술사 임직순’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고인이 1974년 그린 <가을과 여인>이었다. 주홍빛을 띤 블라우스의 강렬한 이미지로 평면화한 배경의 뜨락 속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상이 단박에 매력을 자아내는 그림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며느리 유인숙(69)씨란 사실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삼스레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개인 소장 그림이어서 일부 애호가나 전문가 외엔 아는 이가 적었는데, 최근 시립미술관 전시에 등장하면서 주인공의 정체와 그려진 내력이 알려지게 됐다. 미혼 시절에는 스승인 임직순의 모델로, 결혼 뒤에는 시어머니인 천경자의 모델이 되어, 두 거장이 명작을 낳는 데 뮤즈가 된 유씨의 아름다운 인연이 새삼 미술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유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쳤던 임직순의 제자였다. <가을과 여인>의 주인공으로 임직순의 캔버스 앞에 선 것은 1974년 9월 초 가을이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임 작가는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을 즐겨 모델로 쓰곤 했는데 유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가정에서 엄격한 의사의 딸이었고 학업 성적도 뛰어나고 행실도 얌전한 학생이어서 임직순은 고민하다 어렵게 작업을 도와달라고 말을 꺼냈다. 유씨는 며칠 망설였지만 스승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결국 승낙했다.

모델이 되어 캔버스 앞에 선 장소는 작가가 처음 장만하고 직접 지은 광주 학운동 자택 뜨락의 석류나무 아래였다. 창을 열면 어머니 같은 무등산 기슭의 풍광이 차분하게 안겨오는 집이었다. 여기서 작가는 더운 기운과 서늘한 바람이 갈마드는 계절감을 느끼면서 붉은 블라우스를 입은 제자의 모습을 강렬한 색감을 살려 핍진하게 그려냈다. 선묘가 아닌 색면의 색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주변의 나무와 꽃들의 풍경은 형태를 유지한 채 색이 스며드는 구도로 인물을 부각시켰다.

정원의 꽃밭과 유씨의 모습은 작가에게 생명과 색채에 대한 영감을 계속 발산하게 했고, 유씨는 며칠 동안 수업이 파한 뒤 작가의 집 마당에 몇시간이고 앉아 모델이 됐다. 그렇게 20여일 걸려 그려진 것이 바로 <가을과 여인>이다. 1970년대 초반 일본과 프랑스에서 전시 등을 하면서 국외 구상회화의 자유분방한 색채주의에 더욱 마음이 동한 작가는 더욱 강렬하게 내면의 주관성을 드러낸 색감 묘사에 몰입하게 되는데, <가을과 여인>은 바로 이런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일러주는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 <황금의 비>(1982). 천 화백의 며느리 유인숙씨가 모델이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천경자 화백의 작품 <황금의 비>(1982). 천 화백의 며느리 유인숙씨가 모델이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가을과 여인>을 제작한 이듬해 임직순은 서울로 작업실을 옮겼다. 몇년 뒤 서울 명동에서 같은 예술원 회원이던 천경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장남을 둘러싼 혼담에 제자 유씨가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천경자가 아들과 혼담이 오갔던 유씨 집안과 유씨에 대해 궁금하니 그에게 의견을 말해달라고 한 것이다. 1974년 제자의 자태에서 영감을 받아 열정적으로 인물화 작업을 하며 호감을 느꼈던 임직순은 유씨가 최고 ‘며느릿감’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그 전에 유씨 집안과 교분이 있었지만 유씨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천경자는 임직순의 추천에 마음이 움직여서 장남과 유씨를 다시 만나게 했다. 결국 1979년 두 사람은 결혼해, 유씨는 천경자의 며느리가 된다.

천경자는 생전 자신의 가족들을 작품의 모델로 쓴 것으로 유명했다. 둘째 딸 김정희(68·미국 몽고메리대 교수)씨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즐겨 묘사하곤 했는데, 1979년 딸이 미국 유학을 떠나자 이듬해부터 며느리 유씨가 단골 모델이 됐다. 천경자의 대표작들 중 하나로 회자되는 <황금의 비>(1982)를 비롯한 1980~90년대 말년작들에서 형형하고 신비로운 눈빛을 지닌 채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국외 스케치 여행 중 담은 외국 여인을 제외하면 모두 유씨가 모델이 되어 세상에 나온 것들이다. 이런 사연은 2019년 유씨가 펴낸 회고 에세이집 <미완의 환상여행>(이봄 펴냄)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74년 임직순의 모델이 되어 명작의 주인공이 된 인연으로 유씨는 천경자의 며느리가 됐고, 결국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풍성하게 만든 끌차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가을과 여인>은 색채화가 임직순의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어젖힌 명작이면서, 천경자와 그의 모델 유씨의 숙명적 만남을 이어준 가교 역할을 한 셈이다. 작품의 운명이 여인의 운명으로 이어졌다고나 할까.

유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스승인 임 선생님이 생전 이 그림을 매우 아끼셨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옷을 입고 나갔는데 그때 모습 그대로 담아주셔서 지금도 그게 가장 인상 깊게 기억난다”고 떠올렸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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