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설경구가 8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상동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배우 설경구 특별전 기자회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작품 하나를 할 때 개인적으로 오만 감정이 들어가면서 만들어가는데, <박하사탕>처럼 말초신경까지 끌어와서 하고 주변에 도움받을 거 다 받아가면서 만든 작품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설경구는 자신의 대표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별 고민 없이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8일 오후 경기 부천시 상동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 설경구 특별전(‘설경구는 설경구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번 특별전이 제 연기 인생 30년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했다.
부천영화제는 2017년부터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를 선정해 배우 특별전을 진행했다. 전도연, 정우성, 김혜수에 이어, 3년 만에 재개하는 이번 배우 특별전의 주인공은 설경구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을 거쳐 <꽃잎>(1996)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설경구는 <러브스토리>(1996),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유령>(1999)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러다 첫 주연을 맡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은 그에게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제37회 대종상 신인남우상, 제21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등 10개 상을 안겼다.
배우 설경구가 8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상동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배우 설경구 특별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그는 특별한 자리나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어색해 하는 성정 때문에 특별전 제안을 수락한 것을 후회했다고 했다. “사실은 몇달 전에 배장수 부집행위원장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제가 특별전을 하게 돼 있더라고요(웃음). 전화 끊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내가 배장수 형님에게 당한 건가(웃음)?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지?’ 하고 후회했죠. 소속사 마케팅팀에 연락해서 ‘내가 특별전을 한다고 결정한 거 같다’고 하니 ‘하세요’ 하는 거예요. 전 사실 배우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연기 인생 30년을 두고서는 과거보다 앞으로의 역할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일일이 생각하면서 30년을 온 건 아닙니다. 하나 하나 풀어가면서 오다 보니까 30년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도 여러 일이 있었고 굴곡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잘 버텼다’고 말씀드리는 거거든요. 특별전 이후에 무슨 역할을 하고, 무슨 작품을 할지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특별전이 정중앙은 아니겠지만, 한번 되짚고 가는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 숙제는 결국 연기입니다. 못 풀 거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배우 설경구가 8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상동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배우 설경구 특별전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출연작 7편의 선정 이유도 밝혔다. 그는 “<박하사탕>은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오아시스>도 이창동 감독을 정말 좋아해서 골랐다”고 했다. <공공의 적>에 대해선 “<박하사탕> 끝나고 나서 시민들이 제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몰라서 ‘저기 <박하사탕> 지나간다’고 하더라. 제 이름이 ‘박하사탕’인 시절이 있었다(웃음)”며 “<공공의 적> 하고 나서 그런 게 사라졌다. 새벽에 길 가다가 발견한 웨이터 명함에 강철중이 있더라(웃음). 상업적으로 저를 알린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미도>는 최초의 천만 영화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감시자들>은 책(시나리오)은 그저 그런데 영화를 보고 놀란 작품이다. ‘템포와 리듬으로 이렇게 극적으로 만들 수 있구나. 이게 영화구나’ 싶은 게 <감시자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한당>은 <박하사탕> 이후 저에게 한번 턴을 시켜준 작품이다. <자산어보>는 촬영하는 과정 자체가 힐링이었다. 그 섬에서 나오기 싫을 정도였다. 제가 고르지 않은 작품에서도 좋은 게 많은데, 7개로 골랐다”고 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정지영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설경구는 연기자의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 전까지 한국의 스타급 배우로 안성기가 있었는데, 안성기는 어려서부터 아역을 해서 연기를 특별히 배우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연기를 공부하고 연극을 거쳐 나온 스타로는 설경구가 최초”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그 이후에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그들이 설경구를 보면서 영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한 게 아닌가 싶더라. 그런 측면에서 설경구가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부천/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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