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친환경 행보를 이어가는 케이팝 기업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트와이스 나연, 스트레이 키즈, 엔믹스의 공통점은?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이하 제이와이피) 소속 아이돌이라는 것. 또한 이들이 최근 내놓은 노래가 간접적이나마 전국 14개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들의 음악을 즐기는 행위가 곧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탄소 줄이기’와 이어지는 셈이다.
이런 풀이가 가능한 이유는, 최근 제이와이피가 케이(K)팝 업계 최초로 한국형 아르이(RE)100을 이행했기 때문이다. 아르이100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캠페인이다. 세계적으로는 애플, 구글 등 376곳이 가입했다. 한국형 캠페인은 기업이 옥상, 주차장 등에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직접 설치·투자하거나, 한국전력공사에 전기요금과 별도로 재생에너지를 위한 ‘녹색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등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제이와이피는 본사 건물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쓴 전력량(1393㎿h)만큼의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태양광발전소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지난 5월 캠페인에 참여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인증서 구매는 간접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수요 예측도 할 수 있는 등 재생에너지 발전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세계적 영향력이 큰 케이팝 가수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나선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블랙핑크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홍보대사를 맡고, 방탄소년단(BTS)이 전기차 경주대회 포뮬러이(E)를 알린 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케이팝 기업이 직접 주체가 되어 적극적인 친환경 행보를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이와이피 쪽은 캠페인 참여 배경을 묻는 <한겨레>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당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던 중 재생에너지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한 끝에 아르이100을 이행하게 됐다”며 “전 세계에 목소리를 전하는 엔터테인먼트사의 자발적 아르이100 이행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재생에너지를 알고 사용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국형 캠페인은 지난 2월 시행 1주년을 맞았는데, 참여 기업은 75곳에 그쳤다. 제이와이피 쪽은 향후 아르이100 이행 여부를 묻는 말에, “앞으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지속해서 아르이100을 이행할 계획이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4월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서 ‘케이팝포플래닛’(지구를 위한 케이팝) 활동가들이 국내 엔터사들의 실물 앨범 제작 관행을 비판하는 행위극을 벌였다. 기후위기로 꿀벌 개체수가 줄었다는 점에 착안해 꿀벌 옷을 입고 케이팝 댄스를 추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환경단체는 물론 케이팝 팬들도 제이와이피의 결정을 반기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을 설립한 누룰 사리파 캠페이너는 <한겨레>에 “대담한 전진”이라며 “많은 케이팝 팬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가 지난해 케이팝 팬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케이팝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갈 주체’ 1순위(95.6%)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가 꼽혔다. 이어 팬덤(59.4%), 아티스트(39.5%) 순이었다. 누하 이자투니사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는 “팬들은 연관 상품이나 앨범, 콘서트에서 보다 친환경적인 선택지를 원하지만, 이는 결국 기획사들의 권한 아래에 있다”고 했다.
업계의 변화를 바라는 케이팝 팬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물꼬는 조금씩 트이고 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해 11월 제이와이피, 에스엠(SM), 와이지(YG), 하이브(HYBE) 등 주요 기획사를 상대로 기후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와 1만여명의 서명을 전달한 바 있다. 이들 기획사 어디도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지만, 와이지·에스엠 등은 친환경 소재 앨범을 선보였다. 지난 1월 아이에스티(IST)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아이돌 그룹 빅톤의 세번째 싱글 앨범 <크로노그래프>를 시디(CD)를 뺀 ‘플랫폼 앨범’ 형태로 발매하기도 했다. 하이브는 지난 3월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고, 에스엠은 지난 5일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하는 등 이에스지(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엔터기업들이 기후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일회성 보여주기식 행보에만 머문다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일례로, ‘앨범에 생분해 플라스틱을 사용했다’고 홍보하는 곳이 있지만, 종량제 봉투로 버린 쓰레기 절반 이상이 소각되는 우리나라 폐기물 관리 체계상 생분해 플라스틱보다는 분리 배출을 통해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쓰는 게 환경에 더 낫다”고 말했다. ‘친환경 소재 앨범’이 진짜 친환경적이려면, 앨범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누하 이자투니사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도 “제이와이피는 아르이100 이행 발표 전에 ‘그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친환경 소재를 쓴 상품을 발매했지만, 여기에 ‘랜덤 포토카드’를 넣어서 또 다시 상품의 중복 구매를 유도했다. 이는 ‘그린워싱’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며, “팬들이 보다 지속가능한 ‘팬질’을 할 수 있게끔 기업이 추진하는 친환경 전략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와이지(YG) 소속인 세계적인 케이팝 그룹 블랙핑크는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홍보대사를 맡았다. 블랙핑크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케이팝포플래닛, 환경단체 모두 엔터사들이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는 “제이와이피가 업계 최초로 아르이100 참여라는 화두를 던진 건 긍정적이지만, 아직 케이팝 팬들이 기대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며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는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언제까지 어떻게 실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실행 목표·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캠페이너도 “지난해 세계 3대 음반 레이블인 소니뮤직그룹, 유니버설뮤직그룹, 워너뮤직그룹 등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매년 탄소배출량을 공개하고 세부적인 진행 상황을 온라인에 게시하는 ‘음악기후협약’에 이름을 올렸다. 케이팝의 위상이 세계적인 위치까지 올라간 만큼, 국내 엔터 업계도 책임감을 가지고 세계적인 음악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대열에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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