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을 창피할 정도로 못해요.(웃음) 많은 한국인들이 스스로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하지만 제 한국어보다는 훨씬 낫죠. 그래도 (어린 시절) 못하는 영어와 (현재) 못하는 한국어가 ‘짬뽕’되어 있는 게 바로 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굴러가는 영어 발음 사이로 ‘짬뽕’이라는 한국말이 툭 튀어나왔다. 지난해 8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살아가며 ‘소수자’로 느껴온 복합적인 감정들을 예리하게 풀어낸 <마이너 필링스>(마티)의 저자 캐시 박 홍(46)이 한국을 찾았다. 1960년대 미국으로 간 이민 1세대 부모 아래 미국에서 태어난 저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영어를 접했고 그로 인해 겪은 소외감을 책에서 고백하며 “서투른 영어는 나의 자산”이라고 썼다. 그는 영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며 미국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럿거스대)이기도 하다.
29일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책이 미국 내 소수인종뿐 아니라 한국 독자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에 대해 “인종차별뿐 아니라 모든 억압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라서가 아닐까”라며 “어떤 억압이나 차별의 경험은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마이너 필링스’라고 책 제목을 붙인 데 대해서 단지 차별의 피해자로 스스로를 의식하고 발언하는 것을 넘어 “마치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하면서 겪는 내부의 감각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봉준호·이창동 감독 등을 좋아한다는 캐시 박 홍은 최근 약진하는 ‘케이(K) 콘텐츠’들이 “소수인종들의 다양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며 “특히 같은 작가로서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의 그레이스 조 등 한국계 작가들이 소수자 정체성을 담은 좋은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어 반갑다”고 말했다.
<마이너 필링스>도 스트리밍서비스 ‘훌루’에서 드라마화에 나서 현재 파일럿 에피소드가 제작 중이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인 그레타 리가 제작을 맡았다. 저자는 “책이 복잡한 감정을 다루는 만큼 드라마화를 선뜻 허용할 수는 없었는데, 제안을 한 그레타 리는 아주 ‘특이한’(한국말로) 배우였고 책이 지닌 독특한 유머나 낯선 느낌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캐시 박 홍의 다음 책 주제는 “엄마 딸 이야기”다. “엄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것만으로 책 한권을 채울 것 같아서” 미뤄뒀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자신이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딸을 가진 엄마가 되어 풀어놓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이민 1세대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향해 질주하기만 했던 세대라면 나 같은 2세대는 부모 세대와 갈등하면서도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딸과 같은 3세대는 조만간 소수인종 인구가 백인 인구를 넘어서는 등 미국 사회의 전체적인 다양화 흐름과 함께 정체성의 혼란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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