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16세기 ‘독서당계회도’ 미국 경매서 환수
두모포 독서당 연수 참가자들 ‘뱃놀이 묘사’ 눈길도
1516~1530년 시가독서 과정의 2030대 공직자들
두모포 독서당 연수 참가자들 ‘뱃놀이 묘사’ 눈길도
1516~1530년 시가독서 과정의 2030대 공직자들
490여년 전 조선시대 초기의 서울 한강과 강기슭 풍경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숱한 다릿발들이 서있고, 강변도 온통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지금과 전혀 다른 16세기의 한적한 한강과 주변의 산하를 담은 희귀 그림이 세상에 나왔다. 멀리 서울 북촌에 우뚝 솟은 북한산 산줄기를 배경으로 중랑천이 한강과 합쳐지는 두모포(지금의 옥수동), 압구정 부근의 언덕과 집, 실개천을 묘사하고, 강 위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는 선비들의 모습까지 담아낸, 아름답고 그윽한 실경산수화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3월 미국 경매에서 사들여 환수한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를 22일 오전 10시 서울 경복궁 경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한다.
<독서당계회도>는 세로 187.2㎝, 가로 72.4㎝의 족자 얼개인데, 일종의 단체 기념사진과 비슷한 옛 그림이다. 중종 임금(재위 1506~1544) 연간에 한강변 두모포 독서당이란 공간에서 진행됐던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공직자 학문 연수 과정에 참여했던 문신 관료들 모임(계회)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핵심은 세로 91.3㎝, 가로 62.2㎝ 크기의 비단 화폭. 맨 위에 전서글씨체로 ‘독서당계회도’란 제목을 쓰고 중단부터 수묵채색으로 독서당 주위의 강변 풍경을 그려 넣었다. 화면 중단에 우뚝 솟은 응봉(매봉산)을 중심으로 두모포 일대의 강변과 누각들이 자리한 언덕들의 풍경이 펼쳐지고, 그 안쪽으로 안개에 싸여 지붕만 보이는 독서당 건물이 나타난다. 한강에서 관복 입은 연수 참가자들이 뱃놀이를 하며 계회를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것도 흥미롭다.
그림 아래엔 참석한 관료 12명의 호와 이름, 본관, 생년, 연수에 참여한 시기, 과거 급제 연도, 계회 당시의 품계와 관직 등이 적혀 있다. 이들은 1516~1530년 사가독서 과정에 참여한 20~30대 청년 공직자들이었다. 백운동서원을 세워 조선 서원의 시초를 이룬 주세붕(1495~1554)을 비롯해 성리학 대가로 추앙받으며 <규암집>을 저술한 송인수(1499~1547), 시문에 뛰어났던 문장가 송순(1493~1582) 등의 이름이 보인다.
16세기 한강변 독서당의 정경을 그린 <독서당계회도>는 현재 3점이 전해진다. 이번에 환수된 작품은 그 중 하나로, 이미 국내 학계에 알려져 있던 유물이다. 실경산수로 그려진 계회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조선 초기 실경산수화의 면모를 보여주는 수작이자 참석자들의 이름과 계회 당시 관직명 등을 통해 제작연도를 파악할 수 있어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 정확한 국외 반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초 소장자이던 일본의 동양학자 간다 기이치로(교토국립박물관장 역임)의 사망 뒤 유족으로부터 입수한 다른 소장자가 갖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490년 세월을 거쳐 고국에 돌아온 <독서당계회도>는 새달 7일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9월25일까지) 전시회를 통해 일반 관객 앞에 선보이게 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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