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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선 최초 근대건축가의 첫 설계작품 나왔다

등록 2022-06-10 09:00수정 2022-06-14 10:33

일본 학교 졸업뒤 1920년 조선최초 건축사무소 개소
천도교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부산중·보성고 등 설계
일본서 졸업작 발견…‘낙동미술관’ 고향 건축 염두둔듯
이훈우가 1911년 일본 나고야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면서 앨범에 남긴 졸업설계작품의 도면. ‘낙동미술관설계정면도’란 제목 아래 프랑스 신고전주의풍 대칭형 건축물의 모습을 담고 있다. 김현경씨 제공
이훈우가 1911년 일본 나고야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면서 앨범에 남긴 졸업설계작품의 도면. ‘낙동미술관설계정면도’란 제목 아래 프랑스 신고전주의풍 대칭형 건축물의 모습을 담고 있다. 김현경씨 제공
조선 최초의 근대건축가가 고국에 짓기를 꿈꿨던 첫 작품의 이름은 ‘낙동미술관’이었다.

111년 전인 1911년, 일본에서 망국의 슬픔을 안고 근대 건축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 학도가 있었다. 1908년 일본 나고야고등공업학교(나고야고공)에 입학해 조선인으로는 처음 4년간의 근대적인 건축 교육 과정을 밟고 1920년 조선 최초의 건축사무소를 서울에 개설하며 조선 최초의 근대건축가로 발자취를 남긴 이훈우(1886~1937)다. 그가 나고야고공 졸업을 기념해 앨범에 남긴 첫 설계 작품의 도면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도면을 찾은 이는 일본 교토대에서 일본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은 김현경 서울대 강사다. 수년 전부터 황두진 건축가, 재미 역사연구자 유대혁씨와 함께 이훈우의 행적을 추적해온 그는 1911년 일본 나고야고공(현 나고야공업대학) 졸업앨범을 최근 현지에서 입수해 앨범 속 이훈우 졸업작품 도면을 <한겨레>에 공개했다.

이 졸업앨범은 ‘메이지 44년 나고야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앨범’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일본 나고야공대 졸업생 연계실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메이지 44년(1911) 4회 건축과 졸업생인 마쓰다 쇼헤이가 원래 소장했다가 후손인 마쓰다 준키치가 기증했던 본으로, 지난해 일본에서 귀국을 준비 중이던 김 박사가 수소문한 끝에 내용을 입수했다고 한다. 이훈우의 졸업 작품은 앨범 마지막 부분에 있다. ‘낙동미술관 설계 정면도’란 제목 아래 거대한 반원형 돔을 이고 정확하게 양면 대칭인 다섯칸짜리 프랑스풍 근대 양관 건물의 외양을 그렸다. 창문과 벽체 입면이 꼼꼼하게 구성되고 좌우대칭의 입면도 정확하게 배치돼 그가 능숙한 건축적 감각으로 정면도를 구상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훈우가 근대건축을 전공한 첫 조선인 유학생으로 꼽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졸업작품은 조선인 건축가가 작성한 가장 이른 시기의 근대 건축 설계도면이 되는 셈이다.

건축가 이훈우의 초상 원본 사진. 이훈우 종손 이재완씨 제공
건축가 이훈우의 초상 원본 사진. 이훈우 종손 이재완씨 제공
김 박사는 “지난해 6월 나고야공대를 찾아가 나쓰메 요시노리 교수에게 이훈우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게 계기가 됐다”면서 “나쓰메 교수가 대학 동문회인 나고야공업회와 졸업생연계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인 산다 하루노부를 소개해줬고, 산다가 묵은 소장 자료들을 일일이 뒤지며 탐색한 끝에 졸업앨범에 들어간 이훈우의 설계 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훈우가 졸업작품 미술관에 붙인 낙동이란 명칭은 당시 조선 경상도 일대를 불렀던 통칭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고향 하동이 속한 경상도에 근대미술관을 짓겠다는 구상을 펼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08년 이훈우의 나고야고공 입학 기념사진. 이훈우 종손 이재완씨가 소장해왔다.
1908년 이훈우의 나고야고공 입학 기념사진. 이훈우 종손 이재완씨가 소장해왔다.
이훈우는 일본 나고야고공을 졸업한 뒤 1920년 서울 종로3가에 조선 최초의 건축사무소를 개설했다. 1925년 서울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 앞에 대표작인 천도교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1970년 철거)을 설계해 지은 것을 비롯해 부산중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동덕여학교,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조선일보> 평양지국 등을 설계작으로 내놓았다. 국내 건축계에서 간송미술관, 옛 서울대 본관 등을 설계한 선구적 근대건축가로 널리 알려진 박길룡(1898~1943)보다 10여년 먼저 사무소를 개설하고 근대건축물을 설계하며 활동한 사실이 2년 전 황두진·유대혁·김현경씨의 공동연구(<한겨레> 2020년 8월7일치 17면)로 밝혀져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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