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미경이네’를 아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빈티지 가구,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 오브제와 조명을 한번쯤은 눈에 담았던 이가 틀림없다. 미경이네는 서울 종로구 서촌 창성동에 위치한 카페 ‘mk2’의 귀여운 별명으로, 이곳을 잘 아는 이들이 만든 애칭이다. 하지만 들어서는 순간 촌스러운 애칭과 달리 세련되고 힙한 내부가 펼쳐진다. 감도 높은 빈티지 디자인 체어와 테이블, 흔하게 본 적 없던 조명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존재감이 카페로서의 본질을 압도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흔적과 기분 좋은 멋, 괜찮은 커피와 음악. 마치 베를린의 한 카페에 들어온 것처럼 나 역시 이 장면에 녹아든다. 분명 흔한 듯하지만 흔하지 않다. 무엇이 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었는지, 우리는 왜 이 공간에 특별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 안을 들춰보자.
mk2는 사진작가 이종명 대표가 운영하는 빈티지 가구 숍 브랜드로, 서촌의 카페와 양평 쇼룸 두 곳의 공간이 있다. 쇼룸은 서울 등지에 장소를 옮겨가며 위치를 가늠하다가 양평 문호리에 자리를 잡았다. 양평 쇼룸은 건축가 조병수의 설계로 지어진 곳으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디자인과 마감이 특징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구와 오브제, 조명들이 무심한 듯 자기만의 질서를 이루며 툭툭 놓여 있고 적당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럽의 전시 포스터와 사진들, 바우하우스 서적들이 군데군데 흘러들어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공간의 멋은 이 건축과 가구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에서 배어나는데, 건축은 마치 기교를 넣기 전 도자기처럼 말갛고 담백해 담긴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덕분에 자칫 혼잡해 보일 수 있는 빈티지 가구들은 각자 자기의 편한 자리에 걸터앉아 본연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탁 내비치는 듯하다. 아르네 야콥센, 마르셀 브로이어, 디터 람스 등 여러 브랜드의 오리지널 피스들과 흔치 않은 마스터피스 디자인 가구들이 자신의 공간을 찾아 놓여 있다.
양평 쇼룸은 2020년부터 자리를 잡은 곳으로 더 멋진 공간에서 제대로 가구와 오브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사진 일을 하며 접한 자연스러운 빈티지 문화, 가구에 대한 관심, 관람하고 체득했던 예술과 디자인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종명 대표의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그렇게 수집하듯 좋아하는 가구를 모으고 들여오길 벌써 십수년. 양평 쇼룸의 1, 2층은 그렇게 매번 자신의 자리를 찾아 쉬며 대화를 나누는 가구들로 채워지고, 3층은 대표 부부가 거주하는 감각적인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mk2는 감히 말하자면 여러 빈티지 가구 수입 업체들의 선배 격으로, 단순한 유통과 판매가 아닌 브랜드가 되어 이 문화를 시장에 자리잡게 한 빈티지 가구 숍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개인 카페가 흔하지 않고 프랜차이즈 카페가 성행하던 때, 빈티지 디자인 가구에 직접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스며들듯 “디자인 가구가 있는 카페”라는 하나의 트렌드를 조용히 만들어냈다. 이후 많은 카페들이 이러한 스타일을 좇아 디자인 체어 하나쯤은 꼭 두게 된 것 같으니 말이다.(물론 카피 제품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접하기 어려운 빈티지 제품, 게다가 디자인 가구를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데 있어 쇼룸 외에도 카페라는 대중적인 접점을 만들고 브랜드이자 문화로 자리잡게 한 mk2의 첫 발자취가 의미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행보를 생각해본다. 만약 주거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빈티지 가구가 스며들면 어떨까? 가구뿐만이 아니라 가구를 매개로 전달되는 문화는 어떠한 힘을 지닐까? 각 도시의 디자인과 문화예술을 궤적을 따라가듯 소개하고 전파하는 훌륭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빈티지 가구 숍이 이처럼 단순히 숍으로 끝나지 않고 유무형의 확장을 꾀하면 그 흥미로운 변주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나는 mk2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된 빈티지 가구의 현재를 보았고, 뒤따라오는 2세대, 3세대의 앞날은 어떠할까 기분 좋게 예측하곤 한다.
다양한 빈티지 가구와 조명 등이 전시돼 있는 경기도 양평 문호리 mk2의 쇼룸.
빈티지 가구 숍을 볼 때마다 헌책방이 종종 떠오른다. 누군가는 왜 ‘중고’를 사느냐고 묻는다. 새 가구를 사지 왜 남이 쓰던 가구를 사냐고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그럴 때 나는 반대로 묻는다. 헌책방에 가본 적 있냐고. 헌책방은 단순히 책을 싸게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발견하기 위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헌책방처럼.’ 빈티지 가구 숍의 존재 의의는 이런 데 있다. 대형마트의 질서정연한 가격표나 효율적인 분류, 정해진 유통기한을 따르지 않아도 나와 맞는 ‘그 가구’를 찾을 수 있는 곳. 내가 집어 든 책에서 책을 아꼈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즐거움처럼, 내가 고른 빈티지 가구가 가진 추억과 시간을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흔적을 담은 빈티지 가구는 공간을 채우고, 스토리를 전하다가, 이제는 공간을 넘어서는 하나의 브랜드로서 매력적인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시공간을 품은 빈티지 가구 브랜드, 어떠한 모습과 얼굴로 또 우리를 만나러 올지 오늘도 나는 낯선 거리에서 있을 만남을 기대해본다.
임지선 브랜드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