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에서 주연 정기훈 박사를 연기한 배우 구교환. 티빙 제공
배우 구교환을 처음 인터뷰한 때는 2020년 7월이었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 <반도>에서 악역 서 대위로 열연한 그는 ‘구교환의 발견’이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데뷔 13년차 배우를 향한 스포트라이트에 그는 얼떨떨해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말했다. “많은 분의 관심이 놀랍고 신기해요. 제가 유명해졌다고들 하는데,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로부터 2년 새, 그는 훨씬 더 유명해졌다. 류승완 감독의 대작 <모가디슈>에 출연했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킹덤: 아신전> <디피>(D.P.)에서도 제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달 29일 6부작 전체를 공개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에선 주연 정기훈 박사를 맡았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저주받은 불상이 발견된 이후 벌어지는 괴이한 일들의 비밀을 캐는 인물이다.
2일 화상으로 만난 구교환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독립영화계가 낳은 슈퍼스타’보단 그저 ‘배우’로 불리길 바랐고, 독립영화 <메기>에서 연기할 때의 마음과 큰 상업영화·드라마에서 연기할 때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든 어떤 인물이든, 진심으로 대하는 건 같으니까요.”
지난달 29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 속 장면. 티빙 제공
<괴이> 출연 이유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이랬다. “(작품 속에서) 제가 차에만 타면 죽는다는 루머가 있는데, 그걸 깨고 싶어서요.” <반도>의 서 대위, <모가디슈>의 태준기는 모두 차 안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았는데, <괴이>의 정 박사도 낡은 녹색 차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걸 두고 한 농담이다. “사실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작진에 호감과 신뢰가 있었어요.”
<괴이> 제작진 중 하나가 그를 상업영화 쪽으로 이끈 연상호다. 연상호는 이번에 연출이 아니라 작가로 참여했다. “연상호 감독님이 촬영 전에 저에게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그게 부담을 많이 줄여준 좋은 ‘디렉션’(연기 지시)이었어요. 연 감독님은 굳이 멋을 안 부려서 좋아요. 담백하고 유머러스하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죠.”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에 두번째로 참여하게 된 소감을 물으니 그는 “저도 연니버스 클럽 멤버가 된 건가요? 영광이죠”라며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제겐 ‘구니버스’(구교환+유니버스)도 있어요. 거기서도 활약할 자신이 있어요.”
지난달 29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에서 주연 정기훈 박사를 연기한 배우 구교환. 티빙 제공
실제로 그는 큰 작품들에 출연하면서도 틈틈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와 오랜 영화계 커플인 이옥섭 감독과 유튜브 채널 ‘[2X9HD]구교환X이옥섭’을 운영하며 직접 제작·연출·출연한 단편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브이로그인 척하는 단편영화 <구교환 대리운전 브이로그>와 <러브 빌런> 두편을 최근 공개했어요. 시나리오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아직 널리 알려지진 못했는데, 언젠가 제 작품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독립영화·상업영화, 장편·단편·시리즈, 연출·연기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는 그에게 있어 원동력은 뭘까? “재미요. 저는 의무감을 갖고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재밌으니까 하는 거예요. 물론 권태기라 느낄 때도 있죠. 하지만 다른 이야기, 다른 인물을 만나면서 또 새로워져요. 저는 하나의 캐릭터를 오래 하는 것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게 재밌어요.”
지난달 29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 장면들. 티빙 제공
차기작은 변성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이제훈과 공동 주연한 영화 <탈주>, 웹툰을 실사화한 영화 <신인류 전쟁: 부활남> 등이다. 그는 또 어떤 인물을 보여줄까? 구교환이 연기하는 캐릭터만의 공통점과 연결점을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통점과 연결점을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아서 답변을 드릴 수가 없어요. 의식하는 순간, 제가 다가가는 캐릭터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요.”
그는 자신의 연기 비결은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대본을 보고 어떤 장면을 떠올려도 곧 그 장면을 잊어버려요. 심지어 촬영 때 한번 찍고 난 뒤 그 장면을 다시 찍을 땐 이전 연기를 싹 잊어버려요. 대본이나 기존 연기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저만의 방법이죠.”
이처럼 늘 백지처럼 비우고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구교환의 다음 캐릭터를 미리 예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확실한 건, 작품마다 ‘구교환의 발견’이 거듭되리라는 사실이다. 구교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게 설레고 즐거운 이유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