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개구쟁이>를 낸 김창완이 26일 낮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 우크라이나든 대한민국이든 우리 어른들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는 아이처럼 눈물을 펑펑 흘렸다. 술 몇잔이 마중물이 되어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았던 걸 길어 올린 듯했다. 그는 한참을 흐느꼈다.
밴드 산울림 출신 가수 김창완이 글을 쓰고 이정연 작가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개구쟁이>(북뱅크 펴냄)가 나왔다. 산울림이 1979년 발표한 노래 ‘개구장이’를 토대로 살을 붙이고 그림을 더해 만들었다. 5월5일 어린이날 제정 100돌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어느 식당에서 시작해 자택으로 옮겨 이어간 인터뷰에서 김창완은 ‘개구장이’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개구장이’는 원래 동요가 아니에요. 앨범 <개구장이>는 ‘아니 벌써’가 있는 데뷔 앨범에 대한 반작용 같은 거였어요. 데뷔 앨범이 큰 사랑을 받았지만, 기성 가요를 흉내 냈다는 자성을 하고 있었거든요. 아직 어렸던 우린 연애나 이별 경험도 없이 그 감정을 추측해서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내 마음을 노래해보자’ 해서 만든 게 <개구장이>였죠.”
그러나 음반사는 앨범에 ‘어린이들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의도와 달리 동요 앨범이 된 이유다. “속상했죠. ‘우리가 진심을 다해서 부른 노래인데, 왜 어른들이 들으면 안 되는 거지?’ 하고 생각했어요.”
대중은 그 진심을 알아줬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순수는 통하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은 산울림은 2년 뒤 <산할아버지> 앨범을 발표했다. 이 또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산울림 동요 3집이란 타이틀로 낸 <운동회 날>(1982)은 외면받았다. “과욕이었죠. 마치 우리가 동심을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어린이 세계를 담겠다며 운동회 풍경을 노래했는데, 대중은 냉혹했어요. 거기서 많이 배우고 깨닫고서 나중에 동요 4집 <동심의 노래>를 발표했지만, 그것도 호응을 얻지 못했죠.”
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동심은 묘사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동심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완전성을 지니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일련의 실패와 깨달음은 훗날 ‘할아버지 불알’ 등 동시를 쓰는 계기가 됐다. “그때 동심한테 혼나지 않았다면 이번 그림책 작업 또한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림책에서 주인공 완이는 친구들과 “뜀을 뛰며 공을 차며” 논다. 엄마가 “들어와서 밥 먹어라” 하며 부르지만, 완이는 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칠성이네 지붕에 알 낳은 참새가 구렁이한테 안 잡아먹혔나 가 봐야 하고, 동칠이가 귀신 봤다는 변소에도 가 봐야 한다. 노래 가사에는 없는 이런 내용은 김창완이 2005년 발간한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쓴 대목을 가져온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전적인 그림책이 된 셈이다.
그림책 표지는 김창완이 직접 그렸던 <개구장이> 앨범 표지 원화를 그대로 되살렸다. 다만 이제 표기법이 바뀐 만큼 표지에 쓴 제목도 <개구쟁이>로 바꿨다. 책 속 그림을 그린 이정연 작가는 산울림의 오랜 팬이다. 김창완도 이 작가의 그림을 좋아해 여러 점을 집에 걸어뒀다. 김창완이 2020년 낸 솔로 앨범 <문>(門)의 표지 작업을 한 적이 있는 이 작가는 이번에 처음 그림책에 도전했다. 처음엔 자기 색깔대로 그림을 그렸던 이 작가는 김창완의 표지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그림이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선생님이 40년 전에 그린 그림은 저렇게 순수한데, 제 그림은 너무 아이스럽게 보이려고 의도한 게 드러나더라고요.” 이 작가는 작업했던 그림을 뒤엎고 표지 그림의 캐릭터와 그림체를 가져와 다시 그렸다. 책은 일관성을 지니게 됐다.
김창완은 이 그림책이 “어린이에게 내미는 손”이자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기 이전에 그 자체의 세계입니다. 동심의 세계도 마찬가지예요. 비행기도 타고 싶고, 기차도 타고 싶고, 매미도 잡으러 가야 하고…. 아이들은 할 일이 태산인데, 어른이 된 우리는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제가 아무리 동시를 쓴다 해도 아이들이 쓴 동시가 진짜 보석입니다. 동심 그 자체가 보석이고 별이에요. 이 책은 그런 동심에 대한 질문이자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입니다. 또 내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로 가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가 이토록 동심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빚진 거 같아서”라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아이들에게 미안한지 모르겠지만, 속죄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이 책을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어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사람을 쫓아가거나 흉내 내지 말고 당신의 어린 날로 가세요. 오로지 어렸을 때 당신 모습으로 가라고요, 제발! 그랬으면 폭탄 날리고 하는 이 미친 세상이 됐겠냐고요.”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나중에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어른들이 이러면 안 된다”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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