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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간송 국보 매입한 암호화폐 투자자모임…‘다오’가 뭐기에

등록 2022-03-16 18:52수정 2022-03-17 14:51

외국 투자자모임 ‘헤리티지 다오’
금동불감과 석가삼존불입상 구매
실물은 간송가에 기탁…지분 51% 기부
“문화유산 NFT 사업권 속내가 궁금”
최근 국외 가상자산 투자자모임에 팔린 것으로 확인된 간송가의 금동불감(왼쪽)과 석가삼존상. 국보로 지정된 고려시대 불교미술 명품이다. 지난 1월17~27일 케이옥션 경매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옥션 사옥의 특설 공간에 전시된 모습이다.
최근 국외 가상자산 투자자모임에 팔린 것으로 확인된 간송가의 금동불감(왼쪽)과 석가삼존상. 국보로 지정된 고려시대 불교미술 명품이다. 지난 1월17~27일 케이옥션 경매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옥션 사옥의 특설 공간에 전시된 모습이다.
“도대체 ‘다오’가 뭐지?”

16일 한국 문화판을 휘어잡은 뉴스 주인공은 ‘다오’란 이름의 외국 디지털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자모임이었다. 이 모임이 지난달 간송 전형필(1906~1962)의 고미술 컬렉션의 명품 국보를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팔린 작품은 지난 1월 케이옥션 경매에 국보로는 사상 처음 출품됐다가 유찰됐던 간송미술관 소장 고려시대 불교예술품인 금동불감과 석가삼존불입상이었다.

문화재청 관리 기록에는 이 유물의 소유주가 간송의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으로 표기돼왔다. 그러다 지난달 23일 ‘헤리티지 다오(DAO)’란 외국 가상자산 투자자모임이 문화재청에 소유자 변경 신고서를 냈고, 뒤이어 문화재청이 소유자 명의를 바꿨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다오’에 대한 궁금증이 확산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16일 누리집에 입장문을 내어 “헤리티지 다오는 불감을 재단에 영구 기탁하고, 소유권의 51% 지분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다오’(DAO)는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다. 직역하면 ‘중심이 없는 자율적인 기관 혹은 조직’이란 뜻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엔에프티(NFT·대체 불가능 토큰을 뜻하는 디지털 물품 인증서)를 활용하는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계조직 같은 모임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국내에선 지난 1월 간송가의 국보가 경매에 출품된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엔에프티 회사인 그라운드엑스의 한재선 대표를 비롯한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국보 다오’를 꾸려 클레이튼(KLAY) 코인을 통한 구입 모금을 추진했지만, 목표액 50억원의 절반 조금 넘는 액수에 그쳐 응찰에 실패했다. ‘다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관련 업계에서 나왔다.

국외에서 이런 움직임은 이미 시도됐다. 지난해 11월 미국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개인 소장 미국 제헌헌법 초판 인쇄본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익명의 투자자들이 ‘컨스티튜션 다오’란 이름으로 조직을 꾸려 눈길을 모았다.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가상자산 이더리움을 인수용 재원으로 모금하는 등 새로운 투자 모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지털 투자자모임이 국보를 처음 매입한 건, 앞으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문화유산 디지털 투자가 이뤄지는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주목된다.

케이옥션 쪽은 지난달부터 간송가를 대리해 헤리티지 다오 쪽과 작품 인수 협상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 액수는 공표되지 않았으나 지난 1월 경매 당시 책정된 시작가가 28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 금액을 기준으로 액수가 조율됐을 것으로 보인다.

헤리티지 다오 쪽이 실물을 인수하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매입 직후 소유자 변경 신고서와 함께 간송가가 운영하는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국보를 기탁한다는 ‘관리자 선임 신고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간송가 쪽에 국보 불감의 관리를 맡기겠다는 의향으로 풀이된다.

국보 보물은 문화재보호법상 국외 유출이 허용되지 않는다. 헤리티지 다오 쪽도 간송 쪽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엔에프티 활용 사업의 권리와 실물 소유권의 지분 절반 확보를 조건으로 재기탁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불감은 간송 수중에 남게 됐지만 문화재학계와 고미술업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보 유물을 매입한 모임의 실체가 여전히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재청 누리집에 나온 새 소유주는 ‘헤리티지 DAO’가 아닌 다른 외국 업체명인 ‘볼×××’로 표기됐다. 국가지정문화재 소유자는 익명 조직이 아닌 사람이거나 법인으로 명기되어야 한다. 국내 변호사가 대리인 자격으로 소유자 변경 신고를 하면서 법인업체명을 쓴 것으로 보인다는 게 문화재청 쪽의 설명이다.

엔에프티 사업권을 얻는 대가로 소유권 일부를 되돌려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호하다. 고미술업계의 한 중견업체 대표는 “독점적인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는 과거의 문화유산을 갖고 엔에프티 사업을 하려는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국민들에게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 각인된 국보의 소유권을 쪼개면서 밀실거래를 한 모습도 부정적으로 비칠 공산이 크다”고 짚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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