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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평화는 다른 게 아니고, 음식이고 사랑이야

등록 2022-03-05 13:46수정 2022-03-05 13:51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평화로의 초대 ‘조인 마이 테이블’

이주민 식문화 찾아나선 미식 기행
‘예멘 난민 음식’ 첫회부터 눈길
이방인 취급 않고 한발 나아간 시선
공존·포용 말하는 방송 더 늘어야
왓챠 제공
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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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왓챠’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한 <조인 마이 테이블>은 대학 시절 교수와 제자로 인연을 맺었던 방송인 이금희와 소설가 박상영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함께 맛기행을 하는 미식 프로그램이다. 이렇게만 쓰고 보면 평범한 미식 방송 같지만, 이들이 돌아다니면서 먹는 음식은 다른 프로그램들과는 조금 다르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1화 ‘제주, 평화’ 편을 잠깐 살펴보자. 이금희와 박상영의 여행에 앞서, 프로그램은 예멘에서 온 청년 이스마일씨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예멘에서 온 이스마일이라고 합니다. 반군에 대한 기사 작성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은 저는 2018년 한국에 왔습니다. 예멘이 궁금하다면 제주 아살람 식당에 꼭 가보세요….”

예멘의 맛을 찾아 제주로

가수 요조가 운영하는 서귀포시의 서점 ‘책방 무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책방 옆에 있는 카페에 앉아 역사상 최초로 커피를 경작한 예멘에서 온 원두로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대화를 시작한다. 제주에서 예멘 모카커피를 마시니, 대화의 방향은 자연스레 제주에 정착한 예멘 난민들에 대한 이야기로 흐른다.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이슬람이라 한국 사회에 정착을 잘 못할 것이다”, “스마트폰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난민이냐” 같은 혐오 선동과 루머에 시달리던 제주의 예멘 난민들은, 이제 한국 사회에 정착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이금희와 박상영은 난민들을 향했던 루머를 조목조목 짚고, 이스마일을 도와줬던 한국인 이웃들을 이야기한다. 난민들을 우려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만큼이나 인간 대 인간으로 곁을 내준 이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음미하며 낙관을 잃지 않는다. 서로의 사정을 더 잘 알면 돕고자 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것이라고.

그래서 두 사람은 예멘을 더 잘 알아가기 위해 우리 곁에 살고 있는 예멘인들의 로컬 음식을 함께 맛본다. 이스마일이 고향의 맛과 똑같다고 이야기한 아살람 식당을 찾아가, 마치 한국의 찌개 같은 비주얼의 예멘 전통 음식 ‘파흐싸’를 맛본다. 맛있는 것 앞에서 함박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두 사제는 뚝배기에 담겨서 바글바글 끓는 채로 나온 파흐싸를 보고 탄성을 지른다. 연신 음식을 맛보며 즐거워하던 두 사람은, 한국살이 중인 예멘인들이 아살람을 집과 같다고 말하는 감각을 “우리도 외국 나가면 김치가 당기듯이”라고 이해한다. 이금희는 말한다. “여기도 왜, 예멘인 남편하고 한국인 아내가 같이 하시는 거잖아. 평화는 다른 게 아니라, 음식이고 사랑이야. 음식하고 사랑만 있으면 평화야.”

<조인 마이 테이블>은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곤 하는 이주민들의 음식을 맛보고, 식탁을 가운데 두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까 음식을 다루는 미식 프로그램인 동시에, 음식을 매개로 한국 사회가 이주민들을 잘 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기도 한 것이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여섯번의 식사는 예멘의 파흐싸를 포함해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렝,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 미얀마의 모힝가, 모로코의 타진, 미국의 바비큐다. 일하기 위해, 박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주민들의 로컬 푸드를 한국에서 맛보는 이 독특한 프로그램은, 단순히 맛과 문화를 알아가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한다.

물론 기존에 이런 노력을 기울인 프로그램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방송의 <이웃집 찰스>나 제이티비시(JTBC)의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들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목소리와 문화를 담아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던 프로그램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었다. <비정상회담>은 끝끝내 제1세계 부국 출신의 백인 남성 선호라는 편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이웃집 찰스>는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덜 부유한 국가 출신의 이주민들을 다룰 때면, 종종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느라 그들이 얼마나 풍부한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 다루는 걸 간과하곤 했다. 제1세계 부국 출신의 백인들을 가장 선망하고 그 아래로 촘촘하게 카스트 구조를 이루고 있는 한국 사회의 편견이, 알게 모르게 프로그램 안에도 투영되었던 건 아닐까?

방송인 이금희와 소설가 박상영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고향 음식을 맛보며 평화와 공존을 말하는 미식 기행 프로그램 &lt;조인 마이 테이블&gt;. 왓챠 제공
방송인 이금희와 소설가 박상영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고향 음식을 맛보며 평화와 공존을 말하는 미식 기행 프로그램 <조인 마이 테이블>. 왓챠 제공

식문화 나누며 내민 연대의 손길

<조인 마이 테이블>은 그보다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예멘에서 온 이웃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을 때, 이 프로그램은 고난이나 눈물에 집중하는 대신 평화와 회복, 자긍을 이야기한다. 이스마일은 한국 정착을 도왔던 이웃들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예멘 출신의 동료들과 함께 아살람을 찾아가 고향 음식을 맛보고, 자신의 경험을 담은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예멘에서 온 이들이 얼마나 풍요롭고 매혹적인 식문화를 함께 가져왔는지도 정성 들여 다룬다. 카메라는 아랍의 전통 빵 쿠브즈가 노릇하게 익어가고, 석쇠 위에서 양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지고, 색색깔의 소스를 뿌린 쌀알들이 향긋한 밥이 되는 과정을 화려한 색감으로 담아낸다. 여기에 낯선 이웃에게도 사람 대 사람으로 손을 내미는 연대는 있어도, 함부로 상대를 동정하는 시혜는 없다.

이제 고작 첫 화가 공개되었을 뿐인 <조인 마이 테이블>이 완벽한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도, 다들 왓챠를 구독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점점 더 서로를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내며 배타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혐오와 배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도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공존과 포용, 다양성과 평화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더 많아야 하는 건 아닐까?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새로운 세상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민들이 모여서 만드는 것이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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