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인 이숙경 기획자. 노형석 기자
“전시를 만드는 목적은 간단해요. 관객은 미술사 몰라도 됩니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통찰력을 꼭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작품 보고 감동하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질문도 하게 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게 전시입니다. 광주비엔날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년 4~7월 열리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전격 선임된 이숙경(53)씨는 자신감이 넘쳤고 답변도 막힘이 없었다. 세계적인 명문 미술관인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국제미술수석 큐레이터인 그는 지난 21일 귀국해 광주 현지를 먼저 다녀왔다. 그는 28일 오전 서울 덕수궁 인근 도심 레스토랑에서 박양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와 함께 언론 간담회를 했다.
이씨는 내년 전시 구상을 일부 소개하면서 “행성적 시각으로” 새로운 비엔날레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 모든 생명이 공생하는 지구별 공동체의 관점에서 국내외 작가들을 불러모으고 작품들을 추려 지금 닥쳐온 세상의 위기와 1980년 항쟁의 기반이 된 광주 정신을 살펴보는 기획을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같은 전지구적인 위기를 극복한다고요? 현대미술이 무슨 힘이 있어서 극복하겠어요? 다만 미술은 세상과 세계에 대해 질문하는 힘을 주고 사고를 넓혀주는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술을, 예술의 이런 힘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이씨는 “이런 큰 맥락에서 광주 정신을 재조명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단순한 광주항쟁과 광주의 저항 역사를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억압에 저항하고 정의를 이야기하는 세계 각지의 여러 작가들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본다는 것”이다. 아울러 광주민주화운동의 태반이자 뿌리가 된 광주 지역 전통예술문화, 예를 들어 서화, 서예, 칠공예, 판소리 같은 것들을 탐구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나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로 활동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연수 프로그램으로 영국에 간 것을 계기로 현지 에식스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7년 영국 테이트뮤지엄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정식 큐레이터로 들어갔다. 테이트리버풀을 거쳐 현재 테이트미술관에서 아시아권 작가들의 전시 기획과 작품 수집에 관여해온 그는 지난 2019년 10월 테이트에서 개막해 다음달 싱가포르에서 세계 순회전이 끝나는 백남준 회고전의 공동기획자로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씨는 지난해 전임 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와 노조의 갑질 공방으로 재단과 사무국 조직이 흐트러진 이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전시 사령탑으로 발탁됐다. 미술의 힘은 사고를 전환시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데 있다는 소신을 지닌 그가 수년 전부터 주창해온 특유의 탈국가주의·탈지역주의 담론으로 광주비엔날레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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