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 티브이엔 제공
대중의 관심이 스포츠로 몰리는 올림픽 시즌에 막 방영을 시작한 두 편의 주말 드라마가 있다. <티브이엔>(tvN)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제이티비시>(JTBC)의 <기상청 사람들>이다. 두 드라마는 에스에프(SF) 판타지 설정이나 범죄물 등 ‘쎈’ 설정의 드라마들 사이에서 일상 속 감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청량한 화면에 흐르는 애틋한 행복의 순간들…‘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된 프로젝트였다. 인기 배우들의 출연, 제목의 모티브가 된 노래에 깔린 본연적 서사성, 펜싱이라는 소재에서 오는 청춘 스포츠물로의 가능성 등 로맨스는 물론이고 현대인의 생애주기를 따라가는 대작이 될 기미가 보였다. 다만 1990년대 말의 레트로 무드와 현재 중년이 된 주인공의 수수께끼를 보여주는 도입부는 같은 방송사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상시켰다. 감독과 작가의 전작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지적되었던, ‘워맨스’(woman+romance·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라는 허울의 퀴어베이팅(queer+baiting·진지하게 성소수자를 다루지 않고 미끼처럼 활용), 모방과 구분되지 않는 레퍼런스의 사용도 위험요소로 남아 있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 티브이엔 제공
이 작품은 현재까지는 우려보다는 기대에 더 부응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일단 펜싱 소녀 나희도(김태리)라는 인물의 들뜬 에너지가 드라마를 강하게 끌고 간다. 이는 백이진(남주혁)의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은 피곤한 분위기와 좋은 화학작용을 낸다. 이진은 아이엠에프(IMF) 이전에는 오픈카를 타고 명문대를 다니는 유복한 삶을 살다가,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를 맞으며 순식간에 고단한 신세가 된, 소위 “망국의 왕자” 같은 비련의 인물이다. 시대의 아픔에 씩씩하게 덤비는 희도와 비관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진이 만나 서로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보는 이의 마음에 들어온 순간은 2화 후반부다. 아버지의 빚을 독촉하러 온 채권자들 앞에서 “앞으로 어떤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진을 위로하기 위해 희도는 그를 자신의 옛 학교로 데려간다. 수돗가에서 멋대로 물을 틀어놓고 신나 하는 두 젊은이의 청량한 여름밤 위로 자우림의 곡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흐른다.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며 해맑게 웃는 희도와 그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는 이진 두 사람이 마주 선 장면이 마음을 흔든다.
극중 미래인 현재에 희도는 이진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드러났다. 그런데도 4화 엔딩, 이진의 대사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끝이 있다고 해서 사랑을 기억하지 않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팠지만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몰래 행복했기에 청춘이었다.
<기상청 사람들>의 한 장면. 제이티비시 제공
로맨스의 전형을 비트는 반전의 묘미…‘기상청 사람들’
<기상청 사람들: 사내 연애 잔혹사 편>은 처음에는 배우 박민영이 나오는 또 하나의 직장 로맨틱코미디로 보였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그녀의 사생활> 등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같은 스타일의 반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기상청 사람들>은 기상청 업무에 대한 진지한 묘사에 더불어, 날씨에 대한 다양한 은유 속에서 연애 관계를 표현하면서 자기만의 존재를 구축했다. 부제인 ‘사내 연애 잔혹사’에서 보이듯 포털 사이트의 연애와 결혼 게시판 사연에서 볼 수 있는 생생한 현실감도 잘 살아 있다.
무엇보다도 <기상청 사람들>의 장점은 영리한 신 배치를 통한 반전이다. 2화 마지막, 각자의 연인에게 배신당한 하경(박민영)과 시우(송강)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서로를 위로한다. 이렇게 뭔가 천천히 시작되려나 하는 시점, 신이 튀면서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하경의 모습이 비친다. 술집에서 나온 이후의 사건이 그제야 플래시백으로 보인다.
<기상청 사람들>의 한 장면. 제이티비시 제공
사건의 흐름을 섞어 예상을 뒤엎는 기법은 최근 회차에서도 이어진다. 3화에서 4화로 이어지는 시점, 마음의 환절기를 겪는 하경과 시우는 서로에 대한 관심은 인정하지만, 쉽사리 새 사랑의 계절로 진입하지 못한 듯 보인다. 하경은 시우에게 엄격한 선을 긋고, 두 사람의 속마음은 국지적 안개 속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4화 엔딩에서 부분 부분을 가리던 안개가 흩어지면, 시청자들은 그때야 두 사람이 초반에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고 깜짝 놀라고 만다. 이처럼 <기상청 사람들>은 빠른 전개 속에서 미스터리적 반전을 선사하며, 하경과 시우의 변화된 역학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연애물로서 독창성도 과시했다.
1990년대 순정만화처럼 애틋한 감성을 자극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경쾌한 속도로 동시대의 연애를 그려나가는 <기상청 사람들>은 둘 다 보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드라마다. 덕분에 4화까지 방영된 지금 시청률이 급상승하며 팬들을 모았다. 시청률 면에서는 올림픽으로 휴방한 동시간대 드라마들이 방영을 재개하면 변화가 있겠지만,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숫자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이제는 모두가 각자의 경기를 하는 레이스가 시작된다.
박현주 작가 겸 드라마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