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왕릉원(옛 송산리 고분군)의 29호분에서 출토된 벽돌에 새긴 명문. ‘이것(벽돌)을 만든 이는 건업인이다’(造此是建業人也)란 문장이 새겨져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1500여년 전 중국 난징에서 온 토목 기술자들이 무령왕릉을 비롯한 백제 왕릉을 만들었을까? 백제 왕릉급 고분들이 밀집한 충남 공주 왕릉원(옛 송산리 고분군)에서 중국의 옛 수도인 난징 사람을 뜻하는 ‘건업인’(建業人)이 만들었다는 한문 문구를 새긴 벽돌이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재발굴 조사를 벌였던 왕릉원 무령왕릉 인근 29호 무덤의 들머리를 막는 데 쓴 벽돌들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들 가운데 반으로 잘린 연꽃무늬 벽돌 옆면에서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란 문구가 새겨진 것을 확인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이 문구는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이다’란 뜻으로 풀이된다. 건업은 3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난징에 도읍했던 오나라와 진나라 왕조시기에 왕도의 공식 명칭으로 쓰였으며, 5~6세기 송·제·양·진 남조 왕조 시기에도 이곳 출신 주민들에 의해 널리 불렸던 옛 지명이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벽돌무덤이 남조에서 파견한 기술자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기존 학계의 정설을 더욱 분명하게 입증해주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연구소 쪽은 “벽돌에 새긴 ‘건업인’ 글자를 통해 무덤을 만든 이가 중국 난징 출신이며, 벽돌과 무덤 축조에 남조가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사실상 확정됐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연구소는 29호분 인근 6호분에서 일제강점기 발견됐던 또 다른 새김글자(명문)가 있는 벽돌을 앞으로 비교 연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 벽돌에는 남조의 양나라 관요의 벽돌을 본떠 만들었다는 뜻의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 혹은 ‘양나라의 선이라는 인물이나 양선이란 장인을 스승 삼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양선이위사의’(梁宣以爲師矣)로 판독되는 글자가 초서체로 새겨져 29호분 명문 벽돌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주목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6호분 명문 벽돌의 첫 글자인 양(梁)을 남조의 양나라로 해석하는 견해가 제기돼왔다. 그런데 29호분 명문 벽돌에서 벽돌을 만든 장인의 출신지로 나타난 ‘건업’이 남조 양나라 수도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백제와 남조 중앙정권 사이에 장인들의 교류가 있었다는 점이 더욱 확실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구소 쪽은 “29호분과 6호분 명문 벽돌의 상호 연관관계를 집중적으로 검토하려 한다”며 “29호분 벽돌 글자를 3차원 입체 정밀 분석 기법으로도 판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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