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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다큐 속 ‘유영철’…<오징어 게임> 같은 현실을 들추다

등록 2022-01-09 07:59수정 2022-01-09 09:46

롭 식스미스 감독 인터뷰
넷플릭스 다큐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지난해 10월 공개…외국 감독의 유영철 분석 첫 시도 ‘관심’
“범죄는 사회 엿보는 창구…오늘날 한국 배경 이해 도움”
외국 감독의 시선으로 한국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들여다봐 관심을 끈 롭 식스미스 다큐 감독. 넷플릭스 제공
외국 감독의 시선으로 한국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들여다봐 관심을 끈 롭 식스미스 다큐 감독. 넷플릭스 제공

“많은 시청자가 <오징어 게임> 같은 한국 콘텐츠를 보다가, 그 뒤에 숨은 자본주의적 함의를 설명해줄 수 있는 배경에 목말라 있었다.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가 그들에게 (그 배경의) 중요한 부분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0월22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3부작 다큐멘터리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를 만든 롭 식스미스 감독은 외국 시청자의 반응을 묻는 <한겨레>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는 2003~2004년 일어난 ‘유영철 사건’을 처음으로 외국 감독의 시선으로 담아 관심을 끈 작품이다. 미국 티브이 다큐 감독 롭 식스미스와 한국계 캐나다인 존 최가 2년에 걸쳐 만들었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며 곳곳을 오가느라 어렵게 연락이 닿은 식스미스 감독은 “전세계 범죄 장르 마니아들이 특히 좋아하더라”고 만족해했다.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권일용 당시 사건 감당 프로파일러를 시작으로 수많은 이들의 진술로 사건의 모든 것을 전한다.
권일용 당시 사건 감당 프로파일러를 시작으로 수많은 이들의 진술로 사건의 모든 것을 전한다.

외국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진 점도 식스미스 감독처럼 “유영철의 범죄 대상이 바뀌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감독은 “보통 연쇄살인범들은 범행 수법과 대상을 바꾸지 않는데, 유영철은 그 부분이 다른 연쇄살인범들과 달랐다”고 말했다. 유영철은 부유층이 대상이었다가, 폐회로텔레비전에 뒷모습이 찍힌 뒤로는 지나가는 여성, 이후엔 전화로 여성을 불렀다.

그래서 감독은 3회 동안 유영철의 범행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서술하는 데 집중한다.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고, 어떤 계기로 피해 대상을 바꾸게 되는지 등을 당시 시대와 연결해 설명한다. 우리나라 다큐 공식처럼 여겨지는 살인범의 성장 과정과 불우했던 개인사에 삭막한 사회를 더하는 식의 해석은 다 들어냈다. 감독은 “그가 사회로부터 얼마나 큰 소외감을 느꼈는지와는 별개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행동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영철의 서사를 알지 못하는 외국 시청자, 특히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범의 유년기와 심리 분석, 심리 형성 과정을 알 수 없어서 아쉬워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감독은 대신 접근 방식을 달리해 긴장감을 주는 데 성공했다. 극 전체를 수많은 이들의 인터뷰로 끌어간다. 권일용 당시 프로파일러를 시작으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장,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 사건을 취재한 이순혁 <한겨레> 기자 등이 등장한다. 감독은 “긴밀하게 형성되는 불안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제 3자의 내레이션을 빼고 관련자들이 말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유영철의 대역, 목소리 장면 등이 잠깐 나오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이렇게 긴장감이 고조될 수 있다니. 때론 소름이 돋기도 한다.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만의 특별한 연출도 눈에 띈다. 카메라는 흔들리는 눈, 떨리는 손, 말하는 입술 등 인터뷰이가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반응하는 곳곳을 클로즈업한다. 감독은 “시청자에게 인터뷰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시청자들이 인터뷰이들을 단도직입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유영철이 다른 연쇄살인범과 달리 범죄 대상, 범행 방법을 바꾼 것에 관심이 갔다고 한다. 넷플릭스 제공
감독은 유영철이 다른 연쇄살인범과 달리 범죄 대상, 범행 방법을 바꾼 것에 관심이 갔다고 한다. 넷플릭스 제공

유가족의 현재 삶을 담은 장면은 고마우면서도 슬프다. 아내, 어머니, 아들까지 잃었는데 용의자로 수사를 받아야 했던 남편, 형이 살해당한 뒤 또 다른 가족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등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미국인 감독’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감독은 “범죄 다큐는 출연자 섭외가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다. 실제 피해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풍부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안 될 때도 잦다. 그런데도 도덕성을 지켜야 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고 말했다.

경찰과 검사가 자신들의 실수, 잘못을 직접 얘기하는 장면은 흥미롭다. 경찰과 검사의 말은 뜻밖이다. “잠깐 수갑을 풀어둔 사이 유영철이 도망갔다.” “경찰이 놓친 것으로 하면 더 큰 일이 발생하니까 석방으로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해줬다.” 누군가는 유가족한테 발길질하는 등의 일로 승진 못 한 것을 아쉬워하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웅담처럼 줄줄 얘기하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의견은 둘째 치고, 식스미스 감독은 어떻게 본심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담았을까.

“그들이 어떤 실수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은 이 사건의 규모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들은 어떻게 추적하고 검거할지 훈련도 받지 못한 채로 연쇄살인범과 맞서야 했다. 이 사건과 연루되었던 모든 이들은 지금 그때의 어떤 것에 대해서든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돌아보고 판단을 내리는 건 아주 쉽다. 하지만 이들은 충분한 역량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던 전쟁을 치러낸, 성실하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었다.” 유영철 사건 이후 우리나라 수사 시스템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식스미스 감독은 “이 다큐에서 범죄를 시작으로 경제, 계급, 심리 및 경찰 수사 능력의 진화 같은 더 넓은 범위의 주제를 들여다보길 바랐는데, 외국 시청자들이 그걸 빨리 알아채 주더라”고 했다. 케이(K)콘텐츠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지금 이 시점에 나온 ‘유영철 다큐’가 외국 시청자들에게 그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한국사회가 처음 접한 사이코패스 유영철의 존재는, 1980년대 한국사회의 급성장과 그로 인한 빈부 격차, 2000년대 묻지 마 연쇄살인의 등장 등 어쩌면 현재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식스미스 감독은 “범죄는 그 사회를 깊게 들여다보는 창구”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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