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1910년대, 영국. 어릴 적 테러로 엄마를 잃은 콘래드(해리스 디킨슨)는 유서 깊은 가문인 옥스퍼드가의 자제로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이다. 공작인 아버지 올랜도(레이프 파인스)는 이런 아들을 대견해하면서도 걱정스러워한다. 제국주의 열강을 중심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드리워져가자, 콘래드는 자원입대를 하려 한다. 올랜도는 더 이상 아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비밀리에 운영하던 첩보 조직에 아들을 합류시킨다. 악의 무리 ‘플록’이 영국, 독일과 러시아 등 각국 정부 요직에 침투해 전쟁을 종용한다는 사실을 안 올랜도는, 아들과 함께 악의 일원인 러시아 괴승 라스푸틴 제거에 나선다.
임무를 마친 콘래드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끝내 참전한다. 장교로 후방 근무를 할 수 있었지만, 사병과 군복을 바꿔 입고 독일군과 대치 중인 최전방 전투에 뛰어든 콘래드. 그러나 전장은 낭만적 영웅주의의 현장이 아니라 포탄이 쏟아지고 사지가 잘리는 생지옥이었다. 역사상 유일하게 대전쟁(Great War)으로 번역되는 제1차 세계대전의 복판에서 그는, 독일군 정보를 빼낸 영국 첩보원을 적진에서 구출해낸다. 악의 무리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올랜도는 그들의 근거지를 습격하고 그곳에서 놀라운 인물과 마주한다.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22일 개봉하는 매슈 본 감독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첩보영화의 신기원을 연 <킹스맨> 시리즈의 프리퀄(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1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와 2편 <킹스맨: 골든 서클>(2017)의 주연배우인 콜린 퍼스와 태런 에저턴은 나오지 않는다. 비(B)급 정서와 과장으로 무장한 탓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첩보영화 같은 느낌을 줬던 전작들에 견줘, 유머를 빼고 진중함을 더한 작품이다. 콘래드가 활약하는 전투 장면에선 반전영화의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전작의 익살맞은 통쾌함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법하다.
다만 명품 슈트에 ‘옥스퍼드 낫 브로그’(Oxfords not brogues·브로그 구두가 아닌 옥스퍼드 구두·영화에서 암구호로 사용된 말)를 신은 채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읊조리던 스파이들의 스타일리시한 패션은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고증을 통해 복원된 20세기 초의 기품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남성 정장들은 또 다른 볼거리다. <킹스맨>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킹스맨 양복점’의 초창기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관록의 배우인 레이프 파인스는 이 영화에서 녹슬지 않은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매슈 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레이프 파인스를 떠올렸다”며 “그는 킹스맨 그 자체였다. 진지함 속에 항상 유머 감각이 자리하고 있어 그와의 작업은 정말 즐거웠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눈길 끄는 대목은 100여년 전 인류를 전쟁으로 몰아넣던 ‘플록’의 일원들이 라스푸틴이나 마타 하리, 에리크 얀 하누센 등 모두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설정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스파이인 마타 하리는 극중에서 미 대통령인 윌슨을 유혹한 뒤 그를 협박하고, 훗날 히틀러의 점성술사로 불린 에리크 얀 하누센은 독일 빌헬름 2세를 조종한다. 특히 전쟁 발발의 계기가 된 ‘사라예보의 총성’ 사건이 사실과 다르게 묘사된 점이나 레닌과 히틀러마저도 그 조직원이라는 감독의 상상력은, 매슈 본의 악동 기질을 고려하더라도 역사 왜곡 시비를 낳을 만하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