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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쌀집아저씨’ 김영희 “정치판 오니 호감도 폭락하더군요”

등록 2021-12-20 11:23수정 2021-12-20 13:33

[인터뷰] 김영희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홍보소통본부장
공익 예능으로 사회를 바꾸려 했던 김영희 전 피디가 민주당 홍보소통본부장이 됐다. 마스크는 사진을 찍는 순간에만 잠시 벗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공익 예능으로 사회를 바꾸려 했던 김영희 전 피디가 민주당 홍보소통본부장이 됐다. 마스크는 사진을 찍는 순간에만 잠시 벗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민생, 코로나19 책임질 중요한 대선이라…

“잘해도 못해도 욕먹는 정치판엘 대체 왜 가신겁니까!”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이 질문이 하고 싶어서였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성토에 가깝겠다. 김영희 <문화방송> 전 피디이자 콘텐츠총괄부사장. 지금은 그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홍보소통본부장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그의 영입을 추진 중이라는 <채널에이(A)>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정치인들이 김영희 피디를 잘 모르는구먼’ 하고 넘겼다. 알려진 대로 그는 1986년 방송국 입사 이후,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제안을 받았다. 그가 자주 언급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외에도 진보, 보수 쪽 인물이 몇 명 더 있다. 보수 쪽에는 의외의 인물도 있었다. “(보수 쪽) 그분이 후보 시절 선거 막바지에 강하게 제안을 하셨는데 거절했었어요. 원래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저 같은 방송장이들은 콘텐츠로 좋은 사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할 일이니까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11층 홍보소통본부장실에서 만난 김영희 피디, 아니 소통본부장이 말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왜 이곳에서 마주하고 있나. 그는 굳이 명성에 흠집까지 내며 정치바닥에 발을 디뎠나. 그 순간 안부, 제작사 설립 계획에 대한 애피타이저 이야기는 다 필요 없어졌다. 시작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정치에 관심 없다면서, 발은 왜 담그신 겁니까!

“저도 제가 2021년 연말에 여기 앉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음, 수락한 이유를 한마디로 얘기할 수는 없는데, 굳이 요약하자면 이번 대선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대통령 선거를 민생이나 코로나19에 비춰만 봐도, 중요한 의미가 더해지니까요. 지금껏 콘텐츠로 따뜻한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는데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고민을 할 때 제안을 받았고 조금 더 민생을 좌우할 수 있는 곳에서 도움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주변의 조언에 마음이 좀 흔들렸어요. 지금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구나 싶었어요.”

-권력이나 자리에 욕심이 생긴 건 아니고요?

“하하. 절대 아닙니다. 전 3월 9일 선거가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겁니다. 정치권력에 욕심이 생겼다면 일찌감치 뛰어들었겠죠. 그렇게 기회가 많았는데. 전 콘텐츠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너무 단정 짓진 마세요. 소통본부장이 될 줄도 몰랐잖아요. 불가피한 이유로 집에 갔다가 다시 나와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만 안 온다면 전 절대 할 마음이 없습니다. 정치와 제가 안 맞는 건 확실해요. 정치바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더라고요. 방송국에서는 ‘양심냉장고’ 하겠다고 할 때 본부장 등이 반대해도 한두명 설득시켜 밀어붙이면 되는데, 정치는 방향을 정하면 이쪽저쪽에서 다 검토를 하고 온갖 협의를 해야 하니 간단치가 않더라고요. 문구 하나, 방향 하나도 실수하면 안 되니까. 그래도 이 일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거라 생각하니 그건 좋아요.”

-늘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왜 그러는 거 같으세요?

“제가 정치적으로 쓸모가 있다고 판단하는 거 같아요. 아마 제가 만든 프로그램들 영향이 크지 않을까요? ‘양심냉장고’나 ‘책을 읽읍시다’ 처럼 따뜻하고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들이 많았으니까, 그런 이미지가 정치에 도움이 되겠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프로그램 덕분에 저도 더 친근한 ‘쌀집 아저씨’가 됐고. 방송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도 양쪽에선 다 부담 없었을 수도 있어요.”

-게다가 이번엔 동시에. 윤석열 후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이재명 후보 쪽의 손을 잡았어요. 1시간 기다린 걸 알고 술자리를 가진 뒤 마음을 정했다는 이유만으론 설득이 안 되더라고요. 다른 이유는 없나요?

“첫 술자리에서 바로 답을 한 게 아니에요. 고민해보겠다고만 했죠. 그리고 바로 두세번 정도 또 적극적으로 찾아오셨어요. 세 번째 만났을 때 흔들렸어요. 저를 절실하게 바란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게 왜 중요하냐면 내가 조금이라도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이재명 후보도 직접 그 자리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를 정말 원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을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사람을 몇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요? 내가 도움될지 모르겠지만,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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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 촬영 당시 김영희 피디(가운데). 문화방송 제공

새로운 선거 홍보 보여주겠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의아해할 이들도 있겠다. 민주당 홍보소통본부장을 만났는데, 이재명 후보 지지 발언 하나 없다. 오늘 이 인터뷰에서는 그런 대답은 들을 수 없다. 이 인터뷰는 민주당 홍보소통본부장 김영희가 아니라 “굳이, 왜, 관심도 없던 정치바닥에 발을 디뎌서는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을 스스로 갉아먹었냐 이 바보같은 피디” 김영희에 대한 이야기다. 정치권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방송가에서 김영희 피디의 소통본부장 변신은 꽤 관심 사안이다. 그는 <일밤> ‘칭찬합시다’ ‘양심냉장고’, <느낌표> 등 한국에서 공익 예능을 처음 시도했다. 예능에 자막을 처음 넣은 피디다. <나는 가수다>처럼 새로운 시도로 <문화방송>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15년 한국 피디로는 처음으로 중국 현지에 외주 제작사도 차렸다.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시청자들에게도 친근한 이미지였는데, 정치에 발을 디디는 순간, 하루아침에 선플 가득했던 댓글 창에 악플이 넘친다.

-소통본부장 맡은 순간 호감도가 떨어졌어요. 시사 라디오와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기사 댓글이 대부분 악플이어서 놀랐어요. 지난 2월 <한겨레> ‘토요명작리플레이’에서 ‘김영희표 공익 예능’을 소개하면서 했던 인터뷰의 댓글과 180도 달라요.

“예전에 호감도가 80%였다면 지금은 50%도 안 되게 훅 떨어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만큼 국민이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정치권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게 보는 거죠. 각오는 하고 들어왔어요. 피디 하면서도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서 칭찬받을 때도 우쭐해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의기소침 해하지 않아야죠. 잘해야죠”

-지난 2일 발표 자리에서 이재명 후보의 부드러운 면모를 보여주겠다며 ‘몰래카메라’를 예로 들었어요. 2021년인데 1991년 예능이라니…. 여기에 혼란스러워하는 댓글이 많아요.

“하하. 지금 이 시대에 그런 걸 어떻게…. 아 그럼 대부분 옛날 그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인 줄 아셨던 거군요. 짧은 시간에 많은 얘기를 해야 하다 보니 오해가 있었네요. 지금의 관찰카메라를 말한 거예요. 그 시절의 몰래카메라나 마찬가지인 셈이니까요. 이재명 후보를 속이는 게 아니라, 관찰카메라 방식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얘기였어요.

-김영희표 선거 홍보는 어떨까요? 기대치가 높아요.

“여기 와서 느낀 건, 왜 선거 홍보는 다 똑같을까였어요. 그동안 정치 홍보에서 볼 수 없던 방법을 구상했어요. 대선같이 중요한 선거판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영상을 만들었어요. 코로나 상황임을 고려해서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아이템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에요. 다음주(인터뷰 날 기준으로)부터 시작해요. 선거 홍보도 이런 식이 가능하구나 라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방송국은 아니지만 선거 홍보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겠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일하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아직도 살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방송으로 만들려고 갖고 있던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꺼냈는데, 선거 콘텐츠에 딱 맞게 적용되는 걸 보고 스스로 놀라기도 해요. 크리스마스 관련 이벤트, 연말연시 이벤트, 신년 메시지 같은 건 대부분 프로그램 만들면서 생각해뒀던 수백 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거든요. 아, 여기서도 피디로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재미있어요.”

정치판에 발을 디뎠다는 이유만으로 호감도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는 “각오했다”며 “선거 홍보 문화도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정치판에 발을 디뎠다는 이유만으로 호감도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는 “각오했다”며 “선거 홍보 문화도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드러나지 않은 모습 끄집어낼 뿐, 포장 절대 안할 것

그는 선거 홍보 방법을 구상하면서도 달라진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젊은 세대들이 티브이를 안 보는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예능프로그램에 나가면 반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안에서 봐서 그런가, 이번에는 두 후보 모두 지상파 예능에 나갔는데 큰 영향이 없어요. 이제는 정말 유튜브 이런 데 집중해야 하는 시대라는 게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2030 세대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려 접근 방식부터 다르게 했다. “그동안은 청년들과 소통한다면 인재들 뽑아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게 대부분이었잖아요. 이제는 몸을 부딪하며 젊은 세대들과 운동도 하고, 에스엔에스에 영상도 올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게임도 하는 등 벽을 허무는 등 친근해지는 것”에 무게를 뒀다.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를 보면 오차범위 접전을 벌이고 있어요. (인터뷰날 기준), 김영희표 홍보 전략들이 지지율 높이는 데 역할을 할거라 생각하세요?

“근소한 차이지만 그것 역시 지고 있는 거죠. 그러나 1월이 되면 차이가 확 날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양쪽 모두 2030이나 중도 표심이 중요한데, 마음이라는 것이 정책이나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홍보 전략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움직이게 할 겁니다.”

-후보가 당선되면 소통본부장의 공이라도 인정받지만, 실패하면 피디로서의 명성을 다시 올리기 힘들지도 몰라요.

“이기든 지든 정치계의 선거 홍보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당선되면 이 방식이 먹혔다는 것도 인정받는 거니까 더 좋겠지만. 선거 홍보뿐 아니라 정치판도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안 좋은 걸 파내려고만 하지 말고, 저 후보는 저런 점이 좋지만, 나는 이런 점이 더 좋다, 그런 식의 이야기도 좀 하면서.”

-공익 예능과 정치 홍보는 크게 다른 면이 있어요. 만약에 두 후보의 단점을 지워버리고 없는 것처럼 하거나, 없는 장점을 있는 것처럼 만들라는 임무가 주어진다면, 공익 예능으로 맑은 사회를 만들자던 피디로서 양심을 지킬 수 있으세요?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될 리도 없어요. 왜냐면 국민이나 시청자들의 눈은 정확해요. 예를 들어 ‘양심냉장고’ 첫 주인공인 장애인분들이 정지선을 지켰을 때 감동을 느낀 건 매일 지켰기 때문이에요, 그날만 지켰거나 거짓말을 했다면 그건 아마 느낌으로 읽었을 거예요. 저는 이재명 후보를 포장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지를 절대 만들지도 않을 거고요. 단지 이재명 후보의 드러나지 않았던 점을 끄집어내려는 겁니다. 까칠한 면이 있지만 영리한 점이 부각되어 그렇지, 굉장히 인간적이고 부드러운데 그런 성격이 잘 보이지 않았더라고요. 그런 걸 좀 더 알리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없는 것을 만드는 순간 부작용이 더 커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까지는 아니지만 김영희 소통본부장의 삶은 정치와 많이 엮어있기는 하다. 그가 올해 초 <한겨레> ‘토요명작리플레이’ 인터뷰 때 했던 얘기다. “‘양심냉장고’가 탄생하게 된 건 어떻게 보면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1등 공신이었다.”

김영희 소통본부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이, <일밤>에서 자택에 불쑥 찾아가 기습 인터뷰한 방송이 화제를 모으면서 김대중 당시 총재의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때가 “정치인의 첫 예능 출연”이었다. 김대중 당시 총재의 웃는 모습이 방송에 나간 것도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가 대선이었는데, 이후 정치인들의 출연 요청이 쏟아졌단다. “저한테 직접 오는 건 거절하면 되는데, 윗선을 통해서 들어오고 곳곳에서 요청이 오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이경규씨와 도저히 못하겠다 그만하자 그러면서 찾은 아이템이 ‘양심냉장고’ 였어요. 하하하.”

정지선을 지키게 하고, 각막기증 활성화에 일조하고,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폭주족들에게 헬멧을 쓰게 하고, 이주노동자법을 바꾸게 하는 등 공익 예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그는 후배들의 지탄을 받고, 악플세례를 받는 걸 감수하고 대선 후보 선거 캠프에 들어갔다. “지금은 이곳에 있는 게 맞다”는 그의 결정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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