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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처럼 떠돌던 ‘음원 사재기’ 첫 적발…가요계 왜 잠잠?

등록 2021-11-24 13:32수정 2021-11-24 18:16

소속사 대표-업자, 사재기 들통…이례적 증거 확보
후속적발 가능성 ‘갑론을박’…“시장 투명화 계기돼야”
그래픽 김세미.
그래픽 김세미.

“음원 사재기 문제가 그냥 이대로 묻힐까 걱정이에요. 좀 더 공론화돼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음악 관계자 ㄱ씨의 얘기처럼, 음원 사재기 실체가 첫 규명된 이후 가요계에는 한바탕 태풍이 휘몰아칠 줄 알았다. 음원 사재기 문제는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의혹이 나왔지만, 증거를 찾지 못해 단 한번도 처벌하지 못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흔적이 나온 것이다.

 밀라그로 이재규 대표가 2019년 업자한테 3000만원을 주고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사재기한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나 지난 4일 음악산업진흥법 위반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영탁은 관련없다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재기 실체 첫 규명 사례라 이후 다른 의혹들도 밝혀질까 관심이 쏠렸지만, 20일이 지나도록 음악계는 잔잔하다. 또 다른 가수나 기획사, 업자의 이름도 뉴스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관계자 중에는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며 관심을 갖지 않는 이도 있었다.

지난 의혹까지 해소해주길 바랐지만…

 음원 사재기 문제는 2010년께 수면 위로 떠오른 뒤 때마다 논란이 일었다. 2013년에는 와이지(YG)·에스엠(SM)·제이와이피(JYP) 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 4곳이 함께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지난해 가수 박경이 사재기 의혹 가수를 실명 거론했다가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후에는 의혹 제기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음악 관계자 ㄴ씨는 “가요 역사상 처음으로 실체가 규명된 이번 기회가 지난 의혹까지 말끔히 해소해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사재기는 돈이 오간 정황과 차트 순위를 조작한 증거, 둘 사이 상관관계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제안을 받았다는 증언이 넘쳐나는데도,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번 사례를 이례적인 경우로 본다. 이 대표와 업자처럼 증거를 남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이 대표가 돈을 돌려받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거라고도 한다. 음악 관계자 ㄷ씨는 “소속사 대표는 음원이 생각했던 순위만큼 오르지 않자 업자한테 1500만원을 돌려받았다. 이 과정에서 스트리밍 수 조작을 함께 의뢰했던 사람들과 안 좋게 얽히면서 증거가 남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은 원하는 순위에 오르지 않더라도 돈을 돌려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ㄷ씨는 “어떻게 보면, 대표도 업자도 노련한 ‘꾼’들은 아니었기에 발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업자를 통해 과거에 있었던 사재기 사례들의 단서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ㄱ씨는 “잡힌 업자가 과거에 거래했던 또 다른 기획사나 가수를 얘기하고, 또 다른 업자에 대한 정보를 줄 수도 있지 않나. 이번 기회에 그간 있었던 행위들을 밝혀낼 수도 있지 않느냐”고 기대했다. 이에 대해 몇몇 가요 관계자들은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ㄷ씨는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찾지 못했던 증거를 이제 와서 찾아낼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음원 사재기 논란은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있었다. 뉴스 갈무리
음원 사재기 논란은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있었다. 뉴스 갈무리

“정직한 가수 위해서라도 좀 더 공론화 필요”

 그럼에도 <한겨레>와 통화한 몇몇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사건이 좀 더 공론화되기를 바란다. 음악 관계자 ㄹ씨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과거 사재기 논란을 조사해서 이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투명한 음악계가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뮤지션들이 열심히 만든 음악을 정정당당하게 평가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음원 사재기 논란 이후 가요계에 불신이 커졌다. 팬덤을 거느리거나 유명한 가수를 제치고 이름없는 발라드 가수가 1위를 하면 먼저 사재기 의혹부터 받는다.ㄹ씨는 “정직하게 음원내고 성과를 거둬도 욕먹는 사례들이 있기에, 그런 가수들을 위해서라도 지난 모든 사실이 밝혀져 투명한 음악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음원 사이트들도 사재기 근절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음원 사재기는 스트리밍 수를 조작해서 국내 차트를 끌어올려 이익을 내는 게 목적이다. 2015년 벅스, 지니 등 일부 플랫폼에서 차트 추천곡을 폐지했고, 네이버 음원 서비스 바이브는 음원 수익 배분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대한가수협회는 지난해 투명한 음원 유통을 위한 캠페인 송을 만들기도 했다.
대한가수협회는 지난해 투명한 음원 유통을 위한 캠페인 송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음원 징수 규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한국레이블산업협회는 지난 12일 ‘디지털 음원 시장 상생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현재 음원 저작권료 지급 방식을 ‘비례 배분제’에서 ‘이용자 배분’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례 배분제’는 음원 수익을 점유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용자 배분’은 이용자가 낸 요금이 실제 들은 음악에만 배분된다. 협회는 “음원 스트리밍이 음악 사업의 성공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작용했기에 순위를 올리려는 여러 방법이 등장했고 이 때문에 사재기 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과거 음원 플랫폼 업체가 차트를 없애고 수익 배분 방식을 바꾸는 등 음원 시장에서 변화를 시도했던 것이 한동안 사재기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예전에는 음원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게 차트밖에 없었지만,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음악적 취향도 달라진 요즘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재기 원천차단 시스템은 없을까?

국내 차트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대에 돈을 주고 스트리밍 수를 조작하는 시도는 갈수록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사재기 행위는 알아서 사라지고, 대신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행위들을 사재기로 봐야하느냐는 논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한다.

아예 사재기가 통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가온차트는 지난 10월 음원 사재기와 관련한 새로운 검증법을 내놓았다. 가온차트 쪽은 사재기 의심 음원 이용자와 인접 순위에 있는 인기 가수 음원 이용자가 얼마나 겹치는지를 알아보는 새로운 검증 방법을 제안했다. 가온차트 쪽은 “이용자 패턴 분석 결과를 보면 1위와 2위 곡처럼 국내 차트 상위에 있는 곡은 이용자가 상당수 겹친다. 높은 순위의 곡인데도 주변 순위 곡과 이용자의 상관관계가 도출되지 않으면 사재기 의심 가능성이 커진다”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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