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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 아들 잃은 아버지…구순에도 눈물이 흐른다

등록 2021-11-19 05:00수정 2021-11-19 08:41

[다큐영화 ‘송해 1927’]

‘전국노래자랑’ 최장수 진행자
무대 뒤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
개봉과 함께 동명의 책도 출간
다큐 영화 <송해 1927>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 영화 <송해 1927>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한국방송(KBS) <전국노래자랑>의 최장수 진행자인 송해(94)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른다. 대한민국 최고령 연예인의 인기는 아이돌 그룹 못지않아서 중장년 여성들은 노래하는 그를 “오빠”라 부르며 사진을 찍고 손을 잡는다. 이윽고 보타이를 맨 그가 화면을 바라보고 자기소개를 한다. “제 이름은 송해이고, 고향은 저 황해도 재령이라는 곳입니다. 1927년 4월27일에 태어났습니다.”

18일 개봉한 윤재호 감독의 <송해 1927>은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현역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송해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국전쟁 때 홀로 월남해 희극인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계의 원로가 되기까지, 연예인이란 직업 뒤에 가려진 실향민이자 아버지로서 인간 송해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영화 개봉과 함께 동명의 책(<송해 1927>, 사람의집 펴냄)도 출간됐다. 다큐 촬영 때 이뤄진 송해와 지인들의 인터뷰를 이기남 영화 제작프로듀서가 엮은 이 책에는, 고난의 한국 현대사와 개인사적인 고통을 건너온 한 노인의 회한이 담겨 있다.

다큐 영화 &lt;송해 1927&gt;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 영화 <송해 1927>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사실 송해는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제 본명이 송복희인데, 상륙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망대해를 헤맬 때 제 이름을 다시 지었습니다. 바다 해(海) 자를 따와서 송해(宋海)라고요. 이 이름이 주민등록상 본명이 되었죠.” 한국전쟁 당시 연평도로 피난을 와 미국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3년8개월 동안 통신병으로 복무한 그는 휴전협정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1953년 7월27일에 6·25 전쟁이 드디어 휴전협정을 체결했는데, 이때 휴전협정 모스 암호를 전군에 직접 날렸지요. ‘1953년 7월27일 밤 10시를 기점으로 모든 전선의 전투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55년 제대 뒤 경기도 부천 친구 집에서 살던 그는 서울 한일극장에 ‘창공악극단’이 왔다는 소식에 무작정 찾아가게 된다. 이북에서 해주음악전문학교를 나와 노래도 하고 악기도 다룰 줄 알았으며, 군 복무 중에도 콩쿠르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그의 말에 무대감독이 입단을 허락했다. 연예인 생활의 시작이었다. 악극단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한 그는, 타고난 입담으로 당시 구봉서·서영춘·배삼룡·이순주 등과 함께 극장 쇼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 이후 라디오 출연으로 이름을 알려나가다 1970년대 문화방송(MBC)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여성 코미디언 이순주와 콤비로 활약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다큐 영화 &lt;송해 1927&gt;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 영화 <송해 1927>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그렇다고 그의 삶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다큐와 책에는 그 시절 그가 겪은 개인사적인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가수를 꿈꾼 아들이 22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아, 잃어버린… 아, 네. 흔히 낭패를 당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만 봤지 내가 실감하지는 못했는데, 그런 느낌이 오더군요. 그런데 아들이 그랬다는 소리를 듣고 제가 맨 먼저 생각한 건 걔가 하고 싶다고 한 걸 못 해준 게… 죄스러웠어요.”

스스로 ‘딴따라’를 자처한 그였지만 아들이 가수가 되는 걸 당시의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북에 있을 때 예술 계통으로 가겠다는 나를 아버지가 몹시 나무라서 마음만 있었고 행하지 못했는데, 나 역시 승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식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어찌 아버지 노릇을 하겠는가, 자격 잃은 아버지로서 후회가 컸습니다. 아버지 노릇을 못 했다는 고백입니다.” 다큐에서 송해는 막내딸이 간직하고 있던 아들의 자작곡 녹음테이프를 30여년 만에 들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다큐 영화 &lt;송해 1927&gt;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 영화 <송해 1927>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그는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생전 처음 하루 세번 하던 라디오 방송을 ‘펑크내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시작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로수를 누비며> 송해입니다. 자, 우리 오늘도 안전운전합시다!’였는데… 그 일을 당하고 나니까 그 말이 나오지 않아요. ‘자, 우리 오늘도 안전운전합시다!’라는 말이.” 한동안 그는 사고 현장인 한남대교를 지나가지 못해 돌아서 다녔다.

그런 그를 다시 방송으로 이끈 것이 지금의 <전국노래자랑>이었다. 당시 프로듀서가 배우 안성기의 형 안인기씨였는데 송해를 찾아와 “라디오 진행할 때 매주 일요일에 했던 노래 경연 코너를 알고 있다”며 진행자를 맡아달라고 설득했던 것. “처음에 고사했는데 계속 부탁을 해서 1988년 5월에 <전국노래자랑>을 시작했습니다. (…) 시작하고 한 6개월 지났을 때 제가 또 급한 일이 생겨서 못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시청자분들의 요청이 많고 해서 계속 맡아주면 안 되겠냐고 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다큐 영화 &lt;송해 1927&gt;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 영화 <송해 1927>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출연자들을 섬겨야 한다며 친근하고도 정겨운 진행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언제일까? “2003년 8월11일 모란봉공원에서 한 ‘평양노래자랑’이었지요. (…) ‘그럼 이것으로 평양노래자랑을 여기서 전부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통일의 한길에서 다시 만납시다!’ 하는데 관중들이 ‘와!’ 하고 함성을 내고 박수를 쳤어요. ‘아, 난 정말 지상 최대의 쇼를 했다’, 그런 통쾌감을 느꼈습니다.” 북녘땅에서 역사적인 방송을 했지만 정작 실향민인 그는 자신의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 부모님께 인사드리지 못하고 월남한 것이 아직도 한이라는 그에게 고향은 또 하나의 아물지 않는 상처다.

2018년 아내와 사별한 뒤 지금도 아내 사진을 보며 대화를 한다는 그는, 1년에 한두번씩 100여명이 넘는 코미디언 후배들을 고급음식점으로 불러 밥을 사주고 용돈을 주는 등 선배의 역할도 빼먹지 않는다.

지난 9일 열린 영화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송해는 “영화에 문외한인 내가 윤 감독과 인연이 되어 생전 처음 다큐에 참여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고 봤다. 부끄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으나, 열심히 한 거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 감독은 “송 선생님에 대한 다큐는 흥미로운 주제였고, 100년 가까운 삶을 사신 분인데다,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분이라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적 가치가 있는 살아 있는 역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송해와 지인들의 인터뷰를 이기남 영화 제작프로듀서가 엮은 책 &lt;송해 1927&gt;. 사람의집 제공
송해와 지인들의 인터뷰를 이기남 영화 제작프로듀서가 엮은 책 <송해 1927>. 사람의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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