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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판도라’ 열리나…50년만에 모든 출토품 다 꺼낸다

등록 2021-09-13 08:59수정 2021-09-13 13:51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
1971년 7월 조사단원들이 무령왕릉의 아치형 입구 연도를 가로막았던 벽돌들을 빼고 있는 모습이다. 입구 연도 구멍을 빽빽히 채웠던 벽돌들을 걷어내고 묘실 내부로 들어간 조사단은 이후 몰려든 취재진과 주민들에 겁을 먹고 하룻밤새 유물들을 모두 쓸어담는 패착을 두게 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1971년 7월 조사단원들이 무령왕릉의 아치형 입구 연도를 가로막았던 벽돌들을 빼고 있는 모습이다. 입구 연도 구멍을 빽빽히 채웠던 벽돌들을 걷어내고 묘실 내부로 들어간 조사단은 이후 몰려든 취재진과 주민들에 겁을 먹고 하룻밤새 유물들을 모두 쓸어담는 패착을 두게 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1971년 7월5일. 한국 문화재 발굴 보존의 역사에서 첫손 꼽히는 사건이 시작된 날이다.

배경이 된 무대는 충남 공주의 백제 사적인 옛 송산리 고분군(최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바뀌었다)의 둔덕. 그날 한 인부가 집중 호우에 대비해 기존 봉분들 둘레에 빗물 뺄 물길을 파고 있었다. 한참 파다가 옛 무덤에 쓰였을 법한 벽돌 하나가 삽날에 팅 하고 걸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돌발 상황을 김영배 당시 국립박물관공주분관장에게 보고했다. 뒤이어 급보를 받은 김원룡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관리국과 합동조사단을 꾸리고 이틀 만에 현장에 도착해 벽돌 출토 지점 주위를 파고 내려갔다. 아치 모양을 한 무덤방 입구 통로를 벽돌들로 빽빽하게 채워 막고 있는 단면이 나타났다.

저 벽돌들을 빼면 한국의 투탕카멘이 나올 것인가? 김원룡 조사단장과 단원들은 흥분했다. 삽날에 벽돌이 걸린 지 사흘 만에 아치형 무덤방 입구의 벽돌 수십여개를 빼냈다. 구멍이 뚫리고 서늘한 공기가 훅 불어왔다. 조사단은 식물들의 뿌리가 천장에서 듬성듬성 수염처럼 내려온 내부 무덤방으로 들어갔다. 들머리 바닥에 어딘지 모르게 귀기가 서린 돌 지킴이 동물 석수가 그들을 노려보았다. 이 석수 앞으로 저승 노잣돈으로 올린 중국의 오수전 엽전 꾸러미와 무덤 주인의 지위와 이름을 새긴 지석이 놓여 있었다. 지석 표면의 한자명문에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사마왕’은 5~6세기 백제 중흥 군주였던 25대 임금 무령왕(462~523, 재위 501~523)의 생전 이름이고, ‘영동대장군’은 521년 중국 양나라에서 책봉해준 관작이었다. 삼국시대 왕릉급 무덤들 가운데 처음으로 묻힌 제왕의 신원이 확인되고 부장품도 도굴되지 않은 온전한 무덤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한국 문화재의 역사에서 축복이자 재앙이 된다. 당시 문화재관리국과 고고학계는 후속 수습 작업은 물론 현장 차단과 통제 작업을 할 여건과 능력이 미흡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축복은 유물 수습과정에서 바로 재앙으로 돌변했다. 무덤벽돌 발견 사흘 만에 기본적인 기록도 제대로 하지 않고 쓰레기 치우듯 유물들을 퍼 담은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재앙의 상처는 다시 소중한 교훈과 희망이 되었다. 뒤이어 국내 학계가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 후원을 받으며 벌이게 된 기념비적 발굴의 반면교사가 됐기 때문이다.

무령왕릉의 발견과 발굴의 모든 과정은 판도라의 호기심과 재앙, 남은 희망으로 이어진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의 문화재 발굴, 보존사에서 판도라 상자가 되어 숱한 논란을 빚어온 백제 무령왕릉이 올해로 발굴 50주년을 맞았다. 국립공주박물관은 기념 특별전 성격의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를 연다. 14일부터 내년 3월6일까지 박물관 웅진백제실, 기획전시실에서 진묘수(국보) 등 136건 5283점(무령왕릉 출토품 124건 5232점 포함)을 내보인다.

이번 전시는 무령왕릉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발굴 이래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두 전시한다. 핵심은 상설전시실. 출토유물 중 왕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내놓았다. 들머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이른바 학계에서 동탁은잔이라고 부르는 유물이다. 백제인들의 내세관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받침 있는 은잔이다. 그 표면에 새긴 아름다운 문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왕과 왕비의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진묘수 등 주요 유물들은 관객이 훨씬 더 몰입해 감상할 수 있도록 저반사 유리로 덮은 첨단 진열장에 전시된다. 조명과 받침대도 첨단 기기로 바꿔 감상의 감흥을 배가시켰다.

무령왕릉의 대표적인 출토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무령왕의 관꾸미개 장식. 치솟아 오르는 화염 모양의 무늬가 특징적이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무령왕릉의 대표적인 출토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무령왕의 관꾸미개 장식. 치솟아 오르는 화염 모양의 무늬가 특징적이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핵심 출토품 중 하나인 왕과 왕비의 목관은 3디(D) 입체 스캔해 실제 크기로 선보이게 된다. 또 다른 열쇳말은 다시 강국이 되었다는 뜻의 갱위강국. 무령왕이 당시 중국 남조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선언한 ‘갱위강국’(更爲强國) 선포 1500돌을 기리는 의미에서 관련 자료들도 같이 내놓았다. 기획전시실은 1971년 왕릉 발굴 조사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중심으로 또 다른 볼거리들을 만들었다. 입구에는 왕릉 발견 이후 공주박물관이 발간한 다양한 서적을 관람객이 직접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도입부 프롤로그는 ‘세상에 드러난 무령왕릉’이란 소제목 아래 얼마 전까지 ‘송산리고분군’으로 불리웠던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개황을 소개한다. 우연한 발견과 이후 이루어진 발굴 조사 과정을 살펴보는 얼개로 짜놓았다. 발견 당시 최초 보고 문서와 조사 실측 도면, 탁본, 당시 언론 보도 기사 등이 근거로 나왔다. 1부 ‘무령왕릉과 백제사’는 발굴 이후 50년간 이루어진 주요 학술 성과를 요약해 보여준다. 무령왕을 중국 양나라의 책봉 명인 ‘영동대장군 사마왕’으로 기록한 저 유명한 묘지석과 당대 사서에 기록된 백제인들의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중국 청자 수입품, 동전 오수전, 동제 그릇 등도 볼 수 있다.

2부 ‘무령왕릉과 공주박물관’은 발굴 이후 50년 동안 왕릉 유물을 관리·보존하며 정리한 성과들과 과학기술 발달로 새롭게 밝혀낸 내용을 설명한다. 왕과 왕비 목관의 크기와 구조, 장식 부착 여부 등의 정밀 조사 결과를 최근 반영한 목관 재현품들이 눈길을 끌 듯하다. 왕과 왕비 금동신발에 붙은 채 발견된 백제 직물 등을 분석해 비단 류의 금(錦) 직물과 라(羅) 직물 재현품을 복원해 내놓은 점도 주목된다. 심연옥 한국전통문화대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팀이 왕릉 출토 고리자루큰칼, 금동신발, 관꾸미개, 은잔 등에 새겨진 무늬들 가운데 용, 주작의 이미지를 뽑아 금 직물을 재현 전시한다.

중요 출토품인 왕과 왕비의 베개, 발받침은 나무 재질이어서 긴 기간 전시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동안 상설전시실에서 복제품을 내놓았던 이유다. 이번 전시는 14~26일 왕과 왕비의 베개, 발받침 진품을 처음으로 모두 선보이고, 이후 왕과 왕비의 것을 교대로 전시할 예정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선 장례 과정, 유물 용도 등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연구 과제와 방향을 설명한다.

전시 이해와 감상을 돕는 연계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무령왕이 세상을 떠난 523년부터 발굴된 1971년까지 무덤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디지털 실감 영상 ‘무령왕릉 1448년간의 이야기’를 틀어준다. 어린이 동반 가족과 무령왕릉에 관심 있는 어른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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