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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벽 속에서 ‘인간 제물’ 흔적 또 나왔다

등록 2021-09-07 08:59수정 2021-09-08 02:34

경주 월성에서 여성 인골 발견…인신공희 사례
경주 월성 서성벽의 추가조사 과정에서 최근 발견된 신라인 여성의 인골. 목걸이(경식)와 팔찌를 찬 것이 특징이다. 주검 왼쪽에 토기항아리도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월성 서성벽의 추가조사 과정에서 최근 발견된 신라인 여성의 인골. 목걸이(경식)와 팔찌를 찬 것이 특징이다. 주검 왼쪽에 토기항아리도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의 천년 왕성이었던 경북 경주 월성의 성벽 속에서 신라 사람의 뼈가 또 발견됐다.

지난 2017년 신라인들이 산 사람을 희생 제물로 쓴 인신공희(人身供犧)의 흔적으로 어른 남녀의 뼈 2구와 곰뼈 등이 나왔던 월성의 서성벽에서 최근 희생물로 쓰인 어른 여성 인골 1구와 동물뼈들이 뒤이어 발굴됐다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7일 발표했다.

월성 서성벽에서 나온 인골들은 국내에서 고대 성벽 의례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 자료다. 특히 고대 성벽의 축조 과정에 인간 희생물을 쓴 사례는 한국과 일본의 다른 고대 유적에서는 전례가 없다.

확인된 여성 인골은 이전에 나온 인골과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 등의 고급 장신구를 착용한 것이 특징이다. 키가 135㎝ 전후로 체격은 왜소한 편이다. 동물뼈는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는데, 늑골 부위 위주로 골라 제물로 바쳤던 것으로 보인다. 인골 옆에서는 제례 때 음용한 것으로 보이는 토기항아리가 발견됐는데, 안에 작은 토기가 겹으로 들어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7일 공개된 경주 월성 서성벽 발굴 현장. 큰 고분 내부를 갈라놓은 듯한 모습으로 전면에 보이는 유적이 서성벽 단면이다. 돌들을 겹쳐 쌓은 중심골조 옆으로 진흙층을 덧대어 성벽을 넓힌 흔적이 드러난다. 그 아래 기저층 바닥엔 이번에 출토된 여성 인골과 지난 2017년 출토된 남녀 인골을 각각 프린트한 대형 종이판을 나란히 깔아놓았다. 바로 인골들의 출토 지점이다. 노형석 기자
7일 공개된 경주 월성 서성벽 발굴 현장. 큰 고분 내부를 갈라놓은 듯한 모습으로 전면에 보이는 유적이 서성벽 단면이다. 돌들을 겹쳐 쌓은 중심골조 옆으로 진흙층을 덧대어 성벽을 넓힌 흔적이 드러난다. 그 아래 기저층 바닥엔 이번에 출토된 여성 인골과 지난 2017년 출토된 남녀 인골을 각각 프린트한 대형 종이판을 나란히 깔아놓았다. 바로 인골들의 출토 지점이다. 노형석 기자

인신공희 흔적이 나온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1985년과 1990년 시굴·발굴 조사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20구 이상이 무더기로 나온 바 있다. 연구소 쪽은 “이번에 밝혀진 월성의 축성 작업과 비교해 보면 과거 무더기로 나온 성벽 부근의 인골들 또한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하여 묻힌 것으로 보인다”면서 “성벽 쌓는 과정에서 사람, 동물 등을 상당수 제물로 바친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월성의 기초 부분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본격적으로 쌓아 올리기 전에 성벽과 문터가 견고하게 건립되길 기원하는 인신공희가 치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인신공희 인골이 발견된 지점의 유적 사진. 월성 서성벽의 서문터 부근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인신공희 인골이 발견된 지점의 유적 사진. 월성 서성벽의 서문터 부근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고대 동아시아에서 주거지 또는 성벽의 건축 과정에 사람을 제물로 바쳐 땅 기운을 다스리려 한 습속은 기원전 1600~1000년께 중국의 상나라(은나라)에서 성행했다고 학계에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인신공희 흔적이 추정되는 전례들이 있다.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터를 구제발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9세기 통일신라시대 우물 속에서 어린 아이 유골이 소, 말, 개 등의 뼈, 부서진 제기들과 함께 발견됐다. 월성 해자(연못)의 바닥과 전북 김제 벽골제 저수지에서도 인골들이 나온 전례가 있다. 권력자가 죽으면 수하 사람들도 죽여서 묻는 순장 풍습도 넓게는 인신공희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생전 형상까지 복원했던 창녕 송현동 가야고분군의 10대 순장 소녀, 경북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무더기 순장 인골 등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왕성의 성벽을 쌓는 데서 나온 인골은 과거 사례들에 비해 인신공양 제례의 실체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월성 유적 전경. 오른쪽 끝 점선 표시 부분이 최근 인골이 잇따라 나온 서성벽 구간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 유적 전경. 오른쪽 끝 점선 표시 부분이 최근 인골이 잇따라 나온 서성벽 구간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조사단은 인신공희의 흔적과 더불어 월성 성벽의 축조 연대와 축성 방식도 최초로 밝혀냈다. 기존 성벽이 <삼국사기> 등 역사 기록에 나온 2세기보다 250년 이상 후대인 4세기 초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0~70년이 지난 5세기 초에 이르러 완공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가속질량분석기(AMS) 연대 분석에 바탕해 서성벽의 토목 기술과 축조 공정 세부를 파악한 결과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옛 사서 기록을 보면, 월성은 고신라 초기인 파사왕 22년(101년)에 쌓은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상당수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서의 축성 기록이 실제 축조 연대보다 훨씬 앞당겨진 시기일 것이라며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사서의 월성 관련 기록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번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사실상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월성은 신라 토성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분류되지만, 당대에 이미 다양한 축성 기술을 썼다는 점도 명확해졌다.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깔아 견고성을 높이는 부엽(敷葉)공법 등으로 기초 부분을 다졌고,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 과정에서 볏짚, 점토 덩어리, 건물 벽체 등의 다양한 재료들을 써서 성벽을 높고 거대하게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고도의 토목기술을 적용해 쌓은 왕성 성벽은 너비 약 40m, 높이 10m 이상으로 추정돼 외관과 규모 등에서 웅장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라는 게 연구소 쪽의 설명이다. 신라사 연구의 권위자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4~5세기 경주 일대의 소국이던 사로국이 주변 지역을 통합해 고대국가 신라국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된 시대적 변화를 이번에 발굴된 월성 서성벽의 유적 양상이 그대로 보여준다”면서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인신공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신라 사람들이 월성 축조에 그만큼 많은 공력을 들였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굉장히 갈망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월성 조사구역 도면. 모두 네개 지구로 나뉘어지는데, 에이(A)지구 측면의 서성벽 서문터(점선 부분)에서 인골이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 조사구역 도면. 모두 네개 지구로 나뉘어지는데, 에이(A)지구 측면의 서성벽 서문터(점선 부분)에서 인골이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 유적은 모두 네개 지구로 나뉘는데, 인골이 나온 서쪽 에이(A)지구는 지난 2015년 6월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조사 과정에서 서쪽 성벽을 5세기에 처음 쌓은 뒤 6세기 보수했고, 문이 있던 자리는 유실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조사 성과는 7일 오후 4시부터 연구소의 온라인 유튜브 채널의 현장설명회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8일엔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발굴의 학술적 의미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는데, 역시 온라인 유튜브 채널로 실시간 중계할 예정이다. 토론회는 1·2부로 나눠 1부에서 월성 서성벽 구조·축조 연대·인신공희를, 2부에서는 신라권역과 백제·가야권역 토성의 무덤 자료, 문헌들을 비교 검토하는 차례로 진행된다. 연구소는 월성의 궁궐 배치와 성벽 축조 재료의 자연과학적 분석에 대한 연구 조사도 준비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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