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능가사 목조 십육나한상. 각기 다른 표정과 몸짓 등이 몸에 걸친 지물과 조화를 이루며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제공
조각예술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미켈란젤로나 로댕 같은 서양 거장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작업했던 조선시대 조각 대가들은 거의 모른다. 기존의 학교 교과과정에서 전통조각사는 거의 빠져 있었던 까닭이다. 다행히도 이제 일반인들이 조선시대 조각가들을 기억하고 조명해야 할 계기가 생겨났다.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조각예술의 최고 대가 중 한명으로 평가되는 17세기 승려 색난(色難)의 대표작 불상 4점을 국가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31일 발표했다.
색난의 불상은 표정이 풍부하고 강렬한 개성을 발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불상은 전남 구례의 천년고찰 화엄사를 비롯해 전남 고흥 능가사와 경남 김해 은하사, 광주광역시 덕림사의 석가상, 보살상, 시왕상, 나한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품들 가운데 조형미가 뛰어난 최고 수작들로 꼽힌다. 특히 숙종과 인현왕후 등 왕실의 발원으로 만든 화엄사 각황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보살입상’은 색난의 만년기 작품으로, 품격과 조형미가 단연 돋보이는 걸작이다. 또 활동 근거지였던 능가사에서 만든 응진당 목조 십육나한상은 표정과 몸짓이 보여주는 표현력이 특출하다고 평가된다.
구례 화엄사 목조 사보살입상. 색난의 만년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문화재청 제공
색난은 구체적인 생몰연대와 행적이 전해지지 않지만, 17세기 후반에 주로 활동했다고 추정된다. 조선시대 불교조각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20여건의 작품을 남겼지만, 1990년대 들어서야 국내 미술사학계에서 작품이 본격적으로 발굴되면서 면모가 알려졌다. 1640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나 1660년대 수련기를 거쳐 1680년 조각승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영호남에서 40여년간 활동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당대 사찰 기록에는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란 뜻의 ‘교장’(巧匠) 또는 ‘조묘공’(彫妙工)으로 불렸다는 내용이 나올 정도로 왕실과 불자들 사이에서 최고 대가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에 각계 의견을 듣고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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