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투쟁 현장이 아닌,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 노동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익명의 노동을 가만히 바라보게끔 만들고 그 안에서 노동의 위계가 존재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목표였죠.”
김정근 감독은 영화 <언더그라운드>의 연출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19일 개봉하는 <언더그라운드>는 익숙하지만 모르고 있던 지하철 노동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기관사부터 열차정비공, 선로수리공, 관제사, 청소노동자까지 발밑 노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를 기록한 <버스를 타라>(2012)로 데뷔한 김 감독은, 한진중공업 30년 노동운동사를 다룬 <그림자들의 섬>(2014)으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노동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지하철 노동을 다룬 계기에 대해 그는 “스스로가 철도 덕후였다”며 “한진중공업 노동운동사를 다룬 전작 <그림자들의 섬>을 찍을 때 철과 기계와 인간의 대결에 관심이 많았다. 배를 건조하는 걸 찍었으니 근대의 산물인 도시철도에서 일하는 분들을 찍으면 어떨까 싶었다”고 했다.
다큐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그의 말처럼 지하철 노동은 철의 노동이자 철야의 노동이다. 운행 종료된 전철이 정비창으로 복귀하면 정비공들이 점검에 나선다. 마모 정도에 따라 열차 바퀴를 교체하고 객차 연결 부위와 전자장비들을 체크한다. 선로수리공들은 선로 위를 이동하며 선로 마모도를 측정하고 바닥 자갈을 고르게 한다. 터널정비공들은 레일 위 선반 작업대 위에서 터널 벽면 이물질을 걷어내고 배선 등을 수리한다. 청소노동자들은 환승통로를 물청소하고 스크린도어를 닦는다. 지하철 노동은 각자 떨어져 있지만 구불구불 연결돼 있다. 영화는 안전하고 쾌적한 지하철 뒤에 이토록 많은 이들의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수고가 있음을 가만히 일깨운다.
그렇다고 영화가 노동의 고단함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군무처럼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군무를 하는 듯이 보이는 거죠. 발레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노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주력한다. 마치 쟁의가 있을 때만 노동현장을 반짝 다루고 마는 언론의 태도를 꾸짖는 듯하다.
다큐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물론 지하철 노동은 낭만이 아니다. 영화의 선로 위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지하철 노동의 엄연한 위계와, 무인화 시스템 도입으로 인한 구조조정 등 현실의 고난도 무겁게 놓여 있다. “예전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높았죠. 이제는 ‘내가 시험 봐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대접을 받는 거’라는 계급의 사다리를 체화한 얘기들이 현장에서 나옵니다. 그게 슬프고 더 처연하죠.”
다큐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영화의 무대인 부산지하철은 전국 지하철 가운데 발권과 기관사 업무 등에서 무인화 시스템이 가장 먼저 도입된 곳이다. 영화 속에서 한 기관사는 “발권 업무가 무인화될 때만 해도 숙련도가 중요한 기관사는 무인화와 무관하겠지 싶었는데 이제는 기관 업무도 무인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공공기관 효율화 등의 명목으로 이뤄지는 구조조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보다 이것이 시민 안전을 위해 과연 옳은 방향인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공익근무요원 1명만 있는 부산 무인역사들은 주로 저소득층 동네입니다. 부산지하철 선로는 공간이 비좁아, 사고 나면 고압선 바로 옆으로 이동해야 되거든요. 장애인이 있다면 1명의 공익근무요원이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을까요?”
스스로 공업고등학교 나온 노동자 출신이라 밝힌 그의 영화 속엔 취업을 앞둔 공고 학생들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비정규직의 연쇄고리를 보여주는 이 설정에 대해 그는 “영화는 두개의 레이어(층)로 이뤄져 있다”며 “지하철을 둘러싼 하루 동안 노동의 순환이 한 레이어라면, 이제 막 탄생한 공고 출신 비정규직 노동자와 무인화로 인해 구조조정 위기에 몰린 기관사들이라는 사이클을 또 다른 레이어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