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갤러리 현대 개인전 당시 자신의 추상그림 앞에 선 고 김기린 작가.
최근 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한국 단색조 회화 (모노크롬)의 서막을 연 선구자로, 1960년대 이래 프랑스에서 작업해온 김기린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전속화랑인 갤러리 현대는 지난 12일 오후 (현지시각 ) 파리 거처에서 작가가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 향년 85.
고인은 함경남도 고원 출신으로,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뒤 1961년 프랑스로 유학해 디종대와 파리의 국립고등미술학교 ,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 그 뒤 50여년간 파리에 살면서 단일 색조의 화면에 사각형과 점의 형상들이 도톨한 질감으로 겹쳐지게 하는 특유의 모노크롬 추상화 등을 창작해왔다 .
김기린 작가가 2008년 그린 유화 <안과 밖(Inside, Outside)>.
메를로퐁티 ,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작가는 평생 ‘회화의 안과 밖’이란 화두를 부여잡고 색면의 속성을 뜯어보는 미학적 탐구를 지속했다 . 한국 화단의 고질적인 학맥 파벌 구도와는 담을 쌓고 색과 화면 같은 회화의 본질 찾기에 몰두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말년기인 2000년대 이후 한국 단색조 회화의 서막을 연 작업으로 재조명되면서 본격적으로 부각됐다.
사유가 빈곤하다는 비판을 받는 1970~90년대 국내 단색조 화파와 대별되는 지성적 회화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생전 대구미술관 , 서울시립미술관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했고 , 디종미술관 , 파리시립현대미술관 ,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 유족으로 부인 민병수씨와 1남 1녀가 있으며, 모두 프랑스에 살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갤러리 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