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산림청 헬기가 팔거산성 유적 위에서 해체된 목곽고 부재를 실은 상자를 줄에 매달아 들어 올리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500년 전 신라인들이 수년 걸려 산기슭에 쌓은 거대한 물 저장고 시설물들이 헬리콥터에 통째로 매달려 아래 평지에 내려오는 건 금방이었다. 5일 오전 대구시 북구 함지산 기슭의 고신라~통일신라 시대 유적인 팔거산성 유적에서는 헬기를 동원한, 보기 드문 유물 이송 작전이 펼쳐졌다.
팔거산성은 지난 4월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별로 없는 6~7세기께 대형 나무틀 수조 시설(집수지 목곽고)이 드러났고, 대구권에서는 처음으로 당시 곡물 현황 등을 적은 신라 목간 11점도 무더기로 확인돼 주목을 받았던 유적이다. 조사를 맡은 화랑문화재연구원은 발견 당시 목곽고의 나무 부재가 무너진 상태였고, 그대로 놔둘 경우 썩어서 부스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협의한 끝에 연구소로 이송해 보존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연구소 쪽이 유적 현장의 목곽고 부재들을 신속하게 옮기기 위해 산림청 헬기를 띄우는 프로젝트까지 벌이게 된 것이다.
5일 오전 산림청 헬기가 팔거산성 유적 위에서 해체된 목곽고 부재를 실은 상자를 줄에 매달아 들어 올리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산림청 헬기는 이날 오전 함지산 입구인 옻골공원 착륙장과 산성 사이를 모두 아홉차례 왕복했다. 산성 현장 위에 떠 있는 헬기에서 줄을 늘어뜨려서 포장된 상자를 달아매기 시작한 건 오전 8시부터였다. 나무기둥과 횡판목, 지대목 등의 옛 목곽고 유물 부재 150여개(총무게 4.5t)를 나눠 실은 대형 포장상자 여섯개를 줄에 매달고 계속 날랐다. 중간에 급유까지 하면서 벌인 헬기 이송 작전은 오전 10시 완료됐다. 옻골공원에 부재 상자가 모두 도착하자 연구소 쪽은 지게차로 상자들을 대기 중이던 무진동탑차에 실어 100여㎞ 떨어진 경주로 보냈다. 경주시 인왕동 경주연구소 월성발굴조사단 임시목재보관시설동에 상자가 도착한 건 낮 12시. 불과 4시간 만에 유물 이송은 일사불란하게 끝났다.
1500년 전 신라인들이 만든 팔거산성 집수지 목곽고(나무수조) 유적. 지난 4월 언론에 공개됐을 당시 모습으로 부재들이 안쪽으로 무너져 쏠려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앞서 화랑문화재연구원 직원들은 지난 2주 동안 산성 현장에서 길이 8.5m, 너비 4.9m 규모의 목곽고 수조를 일일이 해체하고 상자에 넣은 뒤 포장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러니까 이송 작전을 벌인 실제 시간보다 유물을 옮기기 위해 준비한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 셈이다. 발굴 유적에서 국가기관의 헬기가 동원되어 현장 유물을 수습, 이송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경주연구소로 옮겨진 유물들은 내년부터 가동되는 수침목재유물 전용 보존처리시설에서 앞으로 10년간 과학적인 보존처리 과정에 들어간다. 팔거산성 목부재는 신라 건축 관련 목재유물로는 2007년 발굴된 경북 문경 고모산성 목곽창고 발견 이래 처음 나온 것들이다. 기록과 실물 자료가 거의 없는 신라의 토목·건축 연구에 소중한 근거 자료로 평가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