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청소노동자와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사고로 같은 건물에서 숨졌다면, 각각의 유족들이 받아야 할 보상금은 같아야 할까, 달라야 할까. 사람의 목숨값은 누가 어떻게 매기는가. 과연 인간의 가치는 평등한가. 21일 개봉한 실화 소재 영화 <워스>는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의 로펌 대표 변호사이자 로스쿨 교수인 케네스 파인버그(마이클 키턴)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50대 후반의 민주당 지지자다. 자신이 설계한 집을 지을 계획에 부풀어 있던 그의 삶은 9·11테러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테러 직후 부시 행정부는 피해자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법무부 산하에 9·11테러 피해자 보상기금을 만든다. 민사소송 전문가인 파인버그는 공명심으로 보상기금 위원장 자리에 의욕을 보인다. 소송에서 한번도 패소한 적이 없던 파인버그는 이번에도 이기는 게임이라고 확신한다. 승산이 높지 않고 오래 걸리는 민사소송에 비해 정부 보상금은 지급이 빠른데다, 전액 비과세라는 점에서 유족들의 동의를 받기 수월할 것으로 봤던 것이다. 이에 부시 행정부는 민주당 지지자인 그를 위원장으로 내세워 싼값에 보상을 마무리하려 한다.
사실 부시 행정부가 이토록 일을 서두른 것은 대기업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공화당 금권정치의 폐해 때문이었다. 테러범들이 민간항공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 건물 등을 들이받은 그날, 항공사에 대한 피해 유족들의 보상 청구를 막기 위한 조항을 긴급 처리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었다.
이윽고 대통령 부시의 격려 전화까지 받으며 출범한 파인버그와 보상기금 직원들은 피해 접수와 함께 보상금 지급액 산정에 착수한다. 민간보험사 보험금 지급 기준 등을 참고해 가구당 평균 165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21억5000만원) 상당의 연방정부 보상금이 책정된다. 이제 25개월 동안 유족 80%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파인버그는 처음부터 위기에 직면한다. 그는 보상금 지급 설명회 자리에서 잇따른 말실수와 무례한 태도로 유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다. 유족들은 희생자의 나이, 가족 규모, 수입 등을 근거로 산정된 보상금 지급 기준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실제 당시 보상지급 기준은 희생자 나이가 적고 가족 수가 많고 고소득일수록 보상 금액이 늘어나도록 책정돼 있었다. 예컨대 35살에 자녀 2명이 있던 최고경영자의 가족은, 60살의 저소득층 독신자 가족(30만달러)보다 무려 10배 이상 많은 380만달러를 받도록 돼 있던 것.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숨졌어도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보상금에 차등이 있었던 셈이다.
또한 기존 가입된 보험금 지급액을 제하고 보상금을 준다고 밝힌 것이나, 주법에 동성결혼이 불법인 경우 희생자와 사실혼 관계였더라도 동성 연인을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점도 논란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유족들을 이해할 수 없던 파인버그는 그들을 따로 만나 보상기금의 장점을 설명하지만 냉대만 받는다. 그사이 9·11테러로 아내를 잃은 찰스 울프(스탠리 투치)는 정부의 기만적인 기금 정책에 반대해 시민단체를 만들고, 유족들은 이 단체로 결집한다. 기금 신청 마감일인 2003년 12월이 다가오지만, 동의하는 유족은 아직 20%에 불과하다. 파인버그는 남은 60% 유족들로부터 동의를 받을 수 있을까.
세라 콜랑겔로 감독의 <워스>는 세속적인 관점으로 피해자들을 대했던 차가운 법기술자 파인버그가 유족들을 만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쫓는다. 파인버그는 유족들의 요구가 단순히 보상금을 더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유족들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이 모든 인간의 가치(워스)를 동등하게 보지 않았던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사회적 약자들의 절규를 “단지 돈 때문”이라 치부하는 시선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사람의 목숨값을 계산기 몇번 두들겨 매기는 행위는 또 어떠한가.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강자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워스>는 사람의 목숨값이 유독 헐값인 한국 사회에도 날카로운 질문이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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