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겨울밤이었다. 원치 않는 자리에서 시달리다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개찰구에서 서로 부딪히는 바람에 둘 다 전철 막차를 놓쳤다. 막차를 놓친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근처 술집이 어딨죠?” ‘취준생’에게 택시비는 살인적이었다. 두 사람은 막차를 놓친 이들의 즉흥적인 술자리에 합석했다. 순전한 우연이었다.
대화할수록 둘의 취향과 기호는 너무도 비슷했다. 이내 서로가 자신의 삶 속 깊숙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녀를 바래다주던 길, 건널목 앞에서 그들은 첫 키스를 한다. 그날은 두 사람 인생의 가장 큰 길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은 모든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만한 날들을 보낸다. 함께 지낼 집을 마련해 동거에 들어간 두 사람은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나간다. 가난했지만 풍족한 시절이었다. “내 삶의 목표는 너와의 현상유지야.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 그녀를 껴안은 채 그는 말했다. 사랑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말처럼, 사랑이 그들에게로 와서 그와 그녀는 ‘너’가 되었다.
그러나 연애는 판타지여서, 현실이 되는 순간 빛을 잃기 마련이다. 오래도록 잘 살기 위해 두 사람은 취업을 한다. 서로의 일에 몰두하는 사이 둘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풍족하지만 되레 가난해진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그녀에게 그는 자신의 일에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 앞에 서서히 이별의 그늘이 드리운다. 사랑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행위이지만, 대개 더 큰 외로움을 낳는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14일 개봉한 일본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감독 도이 노부히로가 연출을 맡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20대의 싱그러운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며 연애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여주인공 ‘키누’(아리무라 가스미)는 바닷가로 놀러간 날, 연인 ‘무기’(스다 마사키)의 웃는 모습을 보며 한 연애 블로그에서 본 말을 되뇐다. “모든 연애의 시작은 끝의 시작이다.” 연애가 시작되면 이미 이별도 시작된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다를 거라고 키누는 다짐했지만, 한 작가의 표현대로 모든 사랑은 다만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다. 영화 제목에 ‘꽃다발’이 들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은 받을 땐 화사하지만, 이내 시들기 시작하는 꽃다발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둘의 속마음을 각자의 내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구성도 돋보인다. 그토록 한결같던 마음이 달라지는 과정을 보는 일은, 애석함을 자아내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지나간 사랑을 환기하게 만든다. 그때 그(녀)도 이런 마음자리였을까. 내가 그(녀)를 붙잡았다면, 그(녀)는 날 떠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린 행복했을까.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애잔하거나 슬프지 않고 밝고 씩씩한 이 영화의 결말은, 부질없는 위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보인다. 우리의 이별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 다만 모든 사랑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어서, 우리는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고 평생을 뒤척인다는 것. 사랑은 그렇게 쓸쓸한 것이지만,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헤어진 자리에서 누군가의 사랑은 싹트게 마련이라는 것. 결국 모든 길은 끝난 곳에서 다시 또 시작된다는 것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