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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문화재 국외반출, 틀어막는 것만이 능사일까

등록 2021-07-14 18:35수정 2021-07-15 02:35

‘문화재 국외반출제도의 현재와 미래’ 국제학술대회 현장
2019년 6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빅토리아 미술관으로 영구반출이 허용된 조선 후기의 책가도.
2019년 6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빅토리아 미술관으로 영구반출이 허용된 조선 후기의 책가도.

국보, 보물을 외국에 팔 수 있을까? 나라가 공식 지정한 최고 보물이니 당연히 팔 수 없다. 그렇다면 공식 지정되지 않은, 들고 움직일 수 있는 일반 동산 문화재는 팔아도 될까? 그것도 안 된다. 우리 문화재보호법은 일반 동산 문화재도 기본적으로 국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국외 거래는 국외 박물관이나 공식 문화재단체가 전시나 소장을 위해 요청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문화재위원회와 당국의 여섯달 넘게 걸리는 심사·허가를 거쳐 허용할 따름이다. 실제로 국내 일반 동산 문화재가 외국에 나간 사례는 2019년과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빅토리아 미술관에서 사들인 조선 후기 책가도와 연화도, 달항아리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화재 선진국이라는 일본과 유럽의 사정은 어떨까?

“일본은 미지정 문화재는 규제하지 않아요. 일반 화물에 준해 일반 문화재의 외국 판매를 사실상 허용한다고 할 수 있죠.”(나가사와 유코 도쿄대 교수)

“이탈리아에서는 세상을 떠난 예술가가 창작한 지 70년이 되지 않았거나 70년이 넘었어도 1만3500유로(약 1840만원) 아래인 미술품은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 수출할 수 있어요.”(주세페 칼라비 예술 전문 변호사)

“프랑스는 외국에 팔 수 있게 허용되는 문화재 작품들의 평가 가치 기준이 장르별로 달라요. 회화는 30만유로(약 4억원), 조각은 10만유로(약 1억3400만원), 사진은 2만5천유로(약 3400만원), 필사본은 3천유로(약 400만원) 이하로 평가되면 팔 수 있죠. 이보다 평가액이 높아서 반출을 불허할 경우 정부가 나서서 소유자의 문화재를 시장가에 사줍니다.”(안소피 나르동 예술 전문 변호사)

지난 8~9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화재청과 한국미술사학회 공동주최로 열린 ‘문화재 국외 반출 제도의 현재와 미래’란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인의 상식과 다른 문화재 선진국들의 정책적 실상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2019년 6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빅토리아 미술관으로 영구반출이 허용된 연화도.
2019년 6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빅토리아 미술관으로 영구반출이 허용된 연화도.

특히 첫날인 8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와 일본, 대만 문화재학계 주요 관계자들이 비대면 줌 화상을 통해 털어놓은 자국의 일반 동산 문화재 반출 허가 기준과 국가적 정책 방침에 대한 언급들은 국내 연구자와 문화재청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반출 심사 기준을 연대뿐 아니라 유물의 가치 평가액으로 나누고 연대도 장르별로 세분화한 유럽 국가의 사례들은 비지정 문화재의 국외 반출과 거래를 사실상 봉쇄한 국내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비쳤다.

뒤이어 지난 9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좌장을 맡아 열린 국내 학자들의 종합토론에서도 최근 새롭게 개정된 서구 선진국들의 반출 기준 제도는 나름의 합리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도 참고해볼 만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무엇보다 최근 한류 문화가 전세계적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그 뿌리인 전통문화 관련 유산들 또한 국제적으로 충분히 소개되고 연구·공유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면, 합리적인 심의 제도를 통해 국보 보물 이외의 일반 문화재는 좀 더 원활하게 반출 거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공감대가 모아졌다.

토론자인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우선 서구 등 국외 미술관·박물관 한국실의 부실한 유물과 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 전시기관 등에 대한 국내 일반 문화재 반출 거래가 좀 더 적극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품 관련 법제를 연구해온 캐슬린 킴 국제변호사는 2018년 한국 민속품 관련 컬렉션을 미국 뉴욕 경매에 처분해 기증하면서 화제가 된 록펠러 2세 컬렉션의 사례를 들면서, 국외 미술관·박물관뿐 아니라 경매 등 일반 거래에서도 국내 문화재들의 출품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행사 전체를 기획한 방병선 한국미술사학회 회장(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과 같은 학교의 김윤정 교수는 서구처럼 재화 가치를 기준으로 반출 가능한 동산 문화재의 범위를 정하는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그동안 미술품 시장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던 학계의 관행을 벗어나 이제는 문화재와 미술품의 반출 기준 형성을 위한 가격 감정평가에 연구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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