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기증관 후보지로 확정된 서울 송현동 일대의 풍경. 서울 도심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푸르른 녹음의 숲으로 차 있다. 노형석 기자
지난 4월 나라에 기증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문화유산 컬렉션을 한자리에 통합전시하는 국립 기증관 시설이 서울 도심에 들어서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월28일 삼성가의 기증 발표 뒤 30여곳 지방지자체의 전용 미술관 유치 경쟁이 벌어지면서 논란을 빚어온 ‘이건희 기증관’(가칭) 건립 장소 최종 후보지를 서울 송현동 옛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숙소 터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 부지로 확정했다고 7일 발표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이날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방안’에 대한 회견을 열어 이런 심의 결과를 알리고 올해 안에 두 후보지 중 한곳을 건립터로 최종 선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열린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방안’에 대한 문체부 기자회견 광경. 황희 문체부 장관이 발언대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황 장관 옆에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영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이 나란히 서있다. 노형석 기자
문체부는 지난달 기증관 장소 선정과 컬렉션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해 김영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등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이하 위원회)와 전담팀을 꾸렸으며,
열차례 논의를 거쳐 단계별 활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기증관을 통합된 별도 공간으로 건립할 필요가 있으며, 국가 기증 취지와 국내외 박물관과의 협력과 확장성 등에서 송현동·용산 부지가 최적이라는 제안을 했다고 문체부 쪽은 전했다.
황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송현동과 용산 부지는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기반시설을 갖춘 국가 전시기관과 가까운 자리에 있어 컬렉션의 연구·관리·전시는 물론 연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 상승효과를 기대할 만한 입지 여건을 갖췄다”면서 “올해 안으로
위원회의 추가 논의와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 건립 터를 최종 선정하려 한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립 이건희 기증관은 한국 최초의 통합형 국립 전시 기관으로 만들어진다. 한국 국공립미술관과 박물관의 역사에서 고대 유물, 고미술과 근현대 미술품을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수장전시시설을 나누지 않고, 한자리에 포괄한 종합 뮤지엄 성격의 국립 전시기관이 처음 건립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수집 범위가 한국 고미술부터 서양 근현대 미술품까지 폭넓고 다양하게 망라된 만큼 이런 컬렉션의 특징과 수집 철학을 잘 살리려면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르지 않고, 한 공간에서 통합적으로 상설전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민 관장은 “기증품의 등록과 기초연구가 마무리되는 2026년이나 2027년 이후 기증관의 개관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문체부는 기증관 건립과 별도로 이건희 컬렉션 관련 전시를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겠다는 방침도 내비쳤다. 이에 따라 내년 하반기부터 연 3차례 이상 지역별 대표 박물관·미술관 순회 전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13개 국립지방박물관, 권역별 공립박물관·미술관과 따로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받은 지역공공박물관과 협력해 지역에서 이건희 기증품을 충실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각각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의 주요 작품들을 선보이는 특별공개전을 21일 동시에 시작한다. 박물관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이란 제목으로 경내 서화실 2층에서 전시를 펼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을 서울관 1층에서 열 예정이다. 기증 1주년인 내년 4월에는 박물관·미술관 쪽이 한 전시 공간에 주요 기증품들을 망라해 내놓는 통합 특별전도 준비 중이다. 문체부는 내년 특별전 때는 리움과 지역박물관·미술관 소장품을 같이 전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관은 지난 4월28일 삼성가 쪽이 미술품과 고고유물, 전적 등 컬렉션 2만3181점의 국가기증을 발표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따로 특별관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을 계기로 부산, 대구 등 30여개 지자체들이 잇따라 유치 의사를 표명하면서 건립 터 선정 문제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바 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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