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김보람 예술감독. 서정민 기자
지금, 이렇게 유명한 현대무용가들이 또 있을까. 밴드 이날치와 협업한 ‘범 내려온다’ 영상이 국내외로 퍼져나가더니만, 급기야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까지 성사됐다. 최근엔 명품 브랜드 구치와도 협업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이하 앰비규어스) 얘기다.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고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올라갔지만, 우린 연예인이 아니에요. 이런 때일수록 기본기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언제나 연습실을 사랑하며 연습을 많이 하는 단체이고자 합니다.”
22일 오후 서울 방배동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앰비규어스의 김보람 예술감독이 말했다. 이날 콜드플레이는 공식 페이스북에 신곡 ‘하이어 파워’에 맞춰 앰비규어스 단원들이 서울 곳곳에서 춤추는 모습을 담은 댄스비디오를 올렸다. 글로벌 스타와의 작업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그는 들뜨지 않고 시종일관 담담한 모습이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단원들이 서울 곳곳에서 콜드플레이 ‘하이어 파워’ 댄스비디오를 찍고 있는 모습. 프로듀서그룹 도트 제공
1983년 전남 완도 태생인 김 감독은 17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춤을 췄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스트리트댄서, 방송국 백업댄서 등을 7년 가까이 한 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하는 등 현대무용가의 길을 걸어왔다. 제도권 무용보다 이전 현장에서 체득한 날것 그대로의 경험이 창작의 원천이 됐다. 그의 춤이 독특한 이유다. 2011년에는 앰비규어스를 창단해 줄곧 함께해왔다. 그는 “배고픈 생활을 오래 했다. 춤을 계속한 건 돈 때문이 아니다. 돈을 떠나 작업적으로 재밌어야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날치와의 작업도 그랬다. 2019년 강원도 철원군 노동당사에서 ‘디엠제트(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개막을 알리려 펼친 특별공연 ‘우정의 무대’가 단초였다. 장영규 음악감독이 군가를 비틀어 만든 무대에서 앰비규어스 단원들이 독특한 춤사위를 펼쳤다. 넉 달 뒤 장영규는 자신의 밴드 이날치의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에 앰비규어스가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한시간 만에 후딱 찍었어요. 본업이 아니다 보니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했는데, 그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범 내려온다’ 춤은 평소 몸 풀 때 동작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가볍고 편안하게 했다고는 해도 그의 사전에 ‘대충’은 없다. “앰비규어스는 자유롭지만, 그 안에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어떤 춤을 추든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확신은 연습에서 나오죠. ‘범 내려온다’ 스텝이 웃겨 보여도 우린 그걸 수천번 한 거예요.”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에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단원들이 콜드플레이 크리스 마틴과 ‘하이어 파워’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는 모습. 프로듀서그룹 도트 제공
지난해 말 콜드플레이가 이 영상을 보고 연락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올해 초 화상으로 미팅을 하고,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하이어 파워’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무용수들이 외계인으로 출연해 춤을 추는 콘셉트였다. 앰비규어스는 현지에서 안무를 직접 짰다.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은 “당신들이 우리 음악에 춤추는 게 아니라, 당신들 영상에 내가 출연하는 것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콜드플레이와의 작업이니 정말 잘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이번에도 편하게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범 내려온다’ 이후 수많은 협업 제안이 왔지만, 대부분 거절했다고 한다. 콜드플레이와의 협업도 오랜 고민 끝에 결정했다. “이날치와 콜드플레이 덕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우리 본업은 아니에요. 백업댄서나 댄스팀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식의 노출은 가급적 피하려 해요. 물론 작업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김보람 예술감독. 프로듀서그룹 도트 제공
국립현대무용단이 8월20~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씨제이(CJ)토월극장에서 펼치는 ‘힙 합’(HIP 合) 무대에서 김 감독은 ‘춤이나 춤이나’ 작업을 새로 선보인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문화방송 라디오)의 전통 소리에 원시적인 몸짓을 섞는다. 이를 확장해 오는 11월 ‘얼이 섞다’ 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전통 소리를 활용한 테크노 사운드에 춤을 결합해 한국형 앰비규어스 클럽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무용은 원초적인 언어예요. 춤은 누구나 출 수 있지만, (현대무용은) 잘 추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사라져가고 있어요. 앰비규어스가 많은 분들에게 무용을 편안한 작업으로 다가가도록 만들고 싶어요. ‘주말에 심심한데 무용이나 보러 갈까?’ 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