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담론과 동아시아 근대성: 현대 중국의 정치적 무의식을 찾아서
차태근 지음/소명출판·3만3000원
2014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프랑스와의 국교수립 50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폴레옹은 중국이 잠자는 사자라고 했는데, 그 사자인 중국은 이미 깨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평화롭고 친화적이며 문명적인 사자이다.” 18~19세기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가리키며 썼던 비유인 ‘잠자는 사자’를, 대국이 된 중국 스스로 끌어다 쓰는 맥락은 과연 어떻게 파악하는 것이 적절할까?
차태근 인하대 교수(중국학)는 <제국주의 담론과 동아시아 근대성>에서 제국주의 담론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근대성 형성에 끼친 영향을 파고들었다. 근대화 이후 경제대국으로 부상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두고, 흔히 전근대 시대의 ‘중화’ 의식이나 천하질서, 조공질서의 현대적 재현 등을 떠올리곤 한다. 앞선 시진핑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중국 스스로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하거나 이를 극복하는 것을 체제의 주된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지은이는 현대 중국의 정치적 무의식은, 비판이든 모방이든 결국 제국주의 담론을 내면화한 결과물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의 중화의식과 서구 열강 중심의 제국주의 의식이 주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돌하지만, 국제관계나 세계질서를 사고함에 있어서는 상호 모방과 흉내를 통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량치차오가 주도해 발행한 <신민총보>는 1903년 2월 발행한 표지에 ‘잠자는 사자'가 깨어나 지구 위를 뛰어오르는 그림을 실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은이는 전근대 제국인 청나라 때부터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근대 사상과 정치의식이 서구 제국주의를 거울로 삼아 스스로를 형성한 궤적을 쫓았다. 서구 열강은 ‘형식적 평등’을 앞세운 세계 질서를 들이대어 ‘형식적 불평등’을 작동원리로 삼아온 중국의 천하질서를 흔들었지만, 사실 그것의 실체는 특정 문명에만 평등할 자격을 부여하는 제국주의 체제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중국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부강’, 곧 민족 단위로 국가를 이루어 주권을 지킬 수 있는 부국과 강병이었다. 20세기 초부터 중국에서 제기된 제국주의 비판은 “오히려 서구 열강의 부강의 비밀을 배워서 제국주의와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은이는 민족을 단위로 한 국가 간 경쟁을 제국주의로 본 미국 정치학자 폴 라인쉬가 동아시아 근대 담론에 끼친 영향, 계몽사상가 량치차오가 제기한 ‘신민설’ 안에 녹아든 제국주의적 의식 등 풍부한 근거들을 들어 근현대 중국이 제국주의를 내면화해온 과정을 풀이한다. 또 이런 작업을 밑받침 삼아, 대국굴기에 돌입한 중국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중국이 중국이라는 한 국민국가의 부국강병, 곧 서구를 흉내내온 제국주의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느냐가 핵심적인 물음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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