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토마 피케티 지음, 이민주 옮김/은행나무·2만원
“누군가가 1990년을 사는 나에게 ‘당신은 2020년이 되면 <사회주의 시급하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할 거요’라고 말했다면 난 웬 말 같지 않은 소리냐고 했으리라.”
3세기에 걸친 전세계 20개국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인 불평등의 뿌리를 밝혀낸(<21세기 자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이번에는 ‘사회주의’라는 불온한 상상력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프랑스 최대 일간지 <르몽드>에 지난 6년간 기고한 칼럼을 엮은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를 통해서다.
피케티는 책의 들머리에서 학창 시절인 1990년대 소비에트의 몰락을 목격한 뒤 스스로 자유주의자의 정체성에 만족해 왔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그는 최근 30여년 끝 간 데 없는 자본주의의 질주를 돌아보며, 이를 극복할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참여적이고 지방분권화된, 민주적이고 환경친화적이며 여성 존중의 사상을 담은 새로운 사회주의를 통해서 말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할 경제체제를 일컫는 말로 사회주의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다고 본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금융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전경. 픽사베이
전작들과 달리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 수 있는 책이지만, 주제 의식은 묵직하다. 피케티가 목격하고 있는 21세기 자본주의는 궤도를 이탈하기 직전 위태롭게 속도를 내는 기관차의 모습을 닮았다. 그는 데이터 분석의 장인답게 미국과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서구권 국가들은 물론 인도와 브라질, 러시아 등 후발주자의 각종 통계를 분석해 세계 각국의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힌다.
더구나 불평등의 확대와 이를 통한 서민층의 소외감은 사회 계층과 인종 문제 등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유발한다. 자본주의의 실패 원인을 소수 집단에 돌리는 혐오의 정치가 힘을 얻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정권의 등장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사태, 유럽 전역의 반이민자 정서 같은 경직된 갈등 구조의 등장은 “경제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진단에 이른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해법은 결국 조세 정의다. 그는 소득세제를 강력한 누진세로 재설계하고, 개인의 자산을 수십년에 걸쳐 국가가 환수할 수 있는 부유세 도입을 촉구한다. “소득세란 지역이나 직업으로 인한 정체성을 넘어 한 국가 내에 가장 빈곤한 자들과 가장 부유한 자들 사이의 불평등을 축소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는 도구이며, 수십억 단위 유로(수조원대)를 보유한 자산가의 등장은 (세습되지 않는) 일시적인 현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공공성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함께 제시한다. 공공의 자원을 교육 투자에 돌려 생산성을 향상하는 한편 계층 간 사다리를 복원하고, 소외 계층에 최소한의 직업적 선택권을 제공하기 위해 ‘최초자산’을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또 기본소득을 통해 빈부격차를 보완하고, 다양한 형태의 보편연금제 논의를 통해 노인 빈곤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만 조세개혁 없는 정책 추진은 결국 사상누각이 될 뿐이라고 강조한다. 유럽의 시장 통합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내세우면서 연방 차원의 재정 확보는 뒷전으로 돌린 유럽연합과 기본소득을 공약하면서 재원 마련에는 침묵한 인도의 제1야당이 사례로 등장한다. 포용적 복지국가 건설을 향해 전진해 온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피케티는 “위대한 정치개혁에는 항상 그 핵심에 조세개혁이 동반됐다”고 충고한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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