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이 자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려고 직접 작성한 노트. “동양 사람은 한문을 배워서 고대의 훌륭한 서적을 읽을 줄 알아야 된다”는 문장이 한자와 한글로 병기되어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수영을 읽으면 첨단 사상과 문예 이론을 소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후진국 시인의 눈을 날카롭게 할퀴는 서양 문물의 광채가 여기저기 번쩍인다. 따라잡을 거리, 넘어설 높이는 아득했다. 제대로 배울 스승도 선배도 없었던 김수영은 독학으로 자기 한 몸에 의지해서 역사의 격차를 줄여나갔다. 도대체 예술적 현대성이 무엇인지, 그 현대성을 뒤떨어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뇌했던 몸짓은 우리 문학사의 위대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몸짓에서 자주 간과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거기에 담긴 전통 복원의 의지다. 김수영이 “자신의 실질적인 첫 작품”을 논할 때 거론된 ‘미역국’(1965)을 보자.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환희를.” 이렇게 시작하는 작품에서 미역국은 “구슬픈 조상”을 비유한다. 조상으로는 조선 유학자가 거명된다. “미역국에 뜬 기름이여 구슬픈 조상이여/ 가뭄의 백성이여 퇴계든 정다산이든 (…) 이것이/ 환희인 걸 어떻게 하랴.”
김수영은 왜 이런 시를 두고 자신의 실질적인 첫 작품이 될 만하다고 했는가. 아마 이 시기에 이르러 전통(특히 유가 전통)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에 대한 절망에서 벗어나 확신에 도달한 것같이 보이는데, 그런 도달 과정은 이렇게 추론해볼 수 있다. 전통은 확실히 말라비틀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그 비틀어진 전통을 미역처럼 한참 삶다 보면 역사에 회생의 활력을 가져다줄 기름이 뜰 것이다.
한해 전에 발표된 ‘거대한 뿌리’(1964)에서도 유사한 역사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전통의 숭고한 크기를 노래하는 이 시에서는 삶기가 아닌 썩기의 논리가 바탕에 깔린다. 전통은 썩어서 수명을 다했지만, 그렇게 썩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 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전통의 긍정과 회생의 논리를 담은 절창이고, 그만큼 널리 애송된다.
그러나 이런 걸작이 그냥 단숨에 터져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전통 회생의 의지는 김수영의 작품 전체를 통해 꾸준히 관찰된다. 10년 전의 작품 ‘더러운 향로’(1954)도 좋은 사례다. 향로는 동양 제례 문화의 상징이다. 시인은 여기서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 옆을 지나며 도취에 빠진다. 동양 사상이 추구한 길은 마음을 취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여기서도 끝없이 더러워지고 썩어빠졌다는 데 있다.
김수영의 공식적인 데뷔작인 ‘묘정의 노래’(1945)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이 시에서는 옛 사당을 복원하는 화공(畫工)이 시적 주체로 설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공자의 생활난’에서는 시인의 길이 군자의 길과 동일시된다. 최초의 두 시 모두 김수영의 정신적 고향이 모더니즘보다는 동아시아 전통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쯤 되면 김수영의 위대함을 단순히 서양의 모더니즘을 한국적으로 소화해냈다는 점에서만 찾기 어려워진다. 차라리 동서의 정신이 만나는 미래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김수영 시에서는 자신을 선비로 의식하는 대목이 심심치 않게 되풀이된다. 이런 데에서 시인은 동서의 전통을 교차시켜 상호 순화와 정돈의 효과를 유도하려는 몸짓을 보여준다. 가령 ‘모르지?’(1961) 같은 시를 보자. “구차한 문밖 선비가 벽장문 옆에다/ 카잘스, 그람, 슈바이처, 엡스타인의 사진을 붙이고 있는 이유/ 모르지?”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각 당대를 풍미하던 서양의 음악가, 과학자, 의사, 조각가다. 선비의 낡은 벽장문 옆에다 첨단 문화의 얼굴들을 붙여놓는 이유를 모르지? 김수영은 비슷한 질문을 ‘거리 1’(1955)에서도 던진다. “스으라(쇠라)여/ 너는 이 세상을 점으로 가리켰지만/ 나는/ (…) 조그마한 물방울로/ 그려 보려 하는데/ 차라리 어떠할까/ ―이것은 구차한 선비의 보잘것없는
일일 것인가.”
김수영은 이런 식으로 동서 상상력의 교차가 일으킬 효과를 묻고 있다. 그런 교차의 전략은 ‘공자의 생활난’에서부터 발휘되었다. 여기서는 점묘화와 문인화 대신 마카로니와 국수가 한자리에 모인다. 명석한 시선을 추구하는 데카르트의 방법과 도덕성을 추구하는 공자의 길이 서로 이어진다. 동양과 서양의 이접적 종합을 의도하는 작시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종합이 일어날 특이점을 김수영은 나중에 온몸이라 불렀다.
그런 온몸에 이르기까지 김수영은 동아시아의 고전을 탐독했을 법하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읽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김수영의 산문에는 하이데거, 보들레르, 바타유, 블랑쇼의 시론을 읽고 감격하는 모습이며 영미권의 비평 이론을 번역하고 학습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반면 동아시아의 고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다는 이야기는 전해진다. 첫 작품 ‘묘정의 노래’가 “어린 시절의 성지”였던 동묘(도교 사원)에서 이미지를 가져왔고, 그곳의 거대한 관우 입상에서 받았던 외경과 공포를 회상하는 대목도 있다. ‘원효대사’(1968)라는 시를 보면, 김수영은 불교에도 무관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인의 길에 들어서서 한자 문화권의 책을 붙들고 씨름한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1945년에 써서 <예술부락> 제2집(1946. 3. 1.)에 발표한 김수영 시 ‘묘정의 노래’. 맹문재 사진 제공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의 시는 우리 고전과 결부시키지 않는다면 해석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가령 ‘격문’(1961) 같은 시는 “땅이 편편하고/ 집이 편편하고”와 같이 온갖 사물에 ‘편편하다’라는 술어를 갖다 붙인다. 그러다가 “진짜 시인이 될 수 있으니 시원하고/ (…) 이 시원함은 진짜이고/ 자유다”로 끝난다. 왜 이런 시에 격문이란 제목이 붙은 것인가. 이는 <논어>(7:37)에 나오는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고 물로 쓸어내린 듯 시원하다”(君子坦蕩蕩)라는 구절에 기대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다. 김수영은 자신이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일정한 경지에 들어섰음을 그런 문장을 빌려 선언하는 것이다.
‘중용에 대하여’(1960)와 “중용의 술잔”이란 표현이 나오는 ‘술과 어린 고양이’(1961)도 <중용>으로 돌아가 해석해야 한다. 중용은 군자가 도달해야 할 최고의 경지다. 유가적인 의미의 자유가 중용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4·19 이후 김수영의 시론을 끌고 가는 자유의 이념은 단순히 서양적인 것도, 단순히 정치적인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거기에는 동서의 자유 개념을 끌어안는 어떤 존재론적인 깊이가 숨어 있다. 김수영이 참여 지식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거듭날 때도 우리는 그의 핏줄에 이미 흐르고 있던 선비정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런 점을 말해주는 것이 ‘폭포’(1957) 같은 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김수영은 이 시를 모더니즘을 구현하는 대표작으로 지목한 적이 있다. 사실 곧은 소리를 부르는 곧은 소리, 모든 규정성을 깨뜨리는 그 무지막지한 소리에는 죽음충동이 꿈틀댄다. 죽음은 모더니즘이 숭배하는 창조적 파괴의 원리다. 그런데 곧음[直]은 과거 선비정신의 핵심에 해당했다. 대쪽에 비유되는 선비정신에는 죽음충동이 이글거린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모더니즘과 선비정신이 서로 식별되지 않는 영점에서 만나고 있다.
널리 애송되는 ‘사랑의 변주곡’(1967)에서는 선비정신의 근간인 성리학에 대한 식견이 드러난다. 이 시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 “아들아/ (…)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를 보자. 여기에 나오는 복사씨와 살구씨는 주자가 유가적인 의미의 사랑[仁]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였던 사례다. 인을 우주론적 원리로 확대했던 주자는 복사와 살구가 씨앗에서 나온 열매이듯, 세상 만물이 인이라는 씨앗에서 나온 열매라 했다. 그런 케케묵은 이야기에서 복사씨와 살구씨를 가져와 김수영은 현대적인 상상력을 발아시켰다.
김수영은 모더니즘을 끌고 가는 두 수레바퀴를 사랑과 죽음이라 했다. 그러나 그 사랑과 죽음은 서양적인 개념도 동양적인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동서 횡단적인 작시법에서 빚어진 도주선이고, 김수영의 마지막 걸작 ‘풀’(1968)은 그런 그의 작시법의 절정에 해당한다.
김상환 | 서울대 철학과 교수·문학평론가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