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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꺼이 마녀가 된 여자들

등록 2021-05-28 05:00수정 2021-05-28 10:05

[책&생각] 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일러스트 장선환
일러스트 장선환

내가 마녀였을 때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장지원 엮음·옮김/더라인북스(2021)

한 여자가 침대에 파묻혀 울고 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상대는 한 집에 살며 어여삐 여겼던 젊은 하녀 예르타였다. 게다가 예르타는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 만약 이 이야기가 흔한 서사로 흘렀다면, 두 여성은 서로를 증오하며 파멸로 이끌 거다. 하지만 작가 샬롯(샬럿) 퍼킨스 길먼은 이야기를 그렇게 이끌지 않는다.

세상 잃은 것처럼 울던 부인은 문득 생각한다. 이것이 정말 불륜인가? 남편과 예르타 사이의 지위와 나이 차이, 그 외의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예르타는 남편의 접근을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을지 모른다. 남편은 부인을 포함해 자기가 가진 것을 잃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소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이용한 거였다. 그때, “강하고 확실하며 압도적인 새로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바로 이런 짓을 저지른 남자를 비난하는 감정이었다.”

부인은 예르타를 내쫓고 가정을 지키는 대신, 예르타의 손을 잡고 남편의 집을 나간다. 훗날 남편이 수소문해서 부인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결혼하기 전의 이름인 ‘휠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예르타와 휠링은 정원이 딸린 집에서 함께 아이를 기른다. 그녀들 앞에 나타난 그에게 “매로너 씨의 아내였던 여자가 조용히 묻는다. 우리에게 할 말이 뭐지?”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두 번째 주인공은 메리다. 메리는 어린 나이에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와의 미래를 꿈꾸며 아이도 낳았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메리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사라진다. 메리에게 남은 건 편지와 갓난아이뿐이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말한다. “난 망가진 여자인가 보군.” 가스등을 밝히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예상과 달리, “거울에서 본 여자는 멋진 삶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보였지 나쁜 삶의 끝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삶을 포기하는 대신 기지를 발휘해 작은 호텔을 인수해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훗날 유부남이 그녀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냉정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그를 배웅한다.

두 이야기는 샬롯 퍼킨스 길먼의 <내가 마녀였을 때>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첫 이야기의 제목은 ‘전화위복’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정숙한 여인’이다.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이 책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21세기에도 폐쇄적인 가족주의와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 구도를 벗지 못한 서사가 가득한데, 1860년에 태어난 작가가 무려 150년 전에 새로운 서사를 풀어낸 것이다. 나는 이것을 윤리적 반전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 읽는다. ‘내가 마녀였을 때.’ 이 문장은 누구든 마녀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누가 마녀로 불리나? 자기 아이 대신 1500명의 마을 사람을 구한 여성, 남편의 아이를 가진 여성과 연대하는 여성, 망가져야 할 상황에서도 자신을 신뢰하는 여성,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로 살겠노라 선언하는 여성,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 창살 밖으로 탈출하는 여성.

소설의 배경은 지금과 다르지 않게 차별의 공기로 혼탁하다. 작가는 멍청한 세상에 섬광처럼 선명하게 존재하는 여성을 뚝 떨어뜨린다. 그녀는 자신을 믿으며 다른 이와 연대하며 살아간다. 책을 덮은 뒤, 앞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이든 내 삶이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세상이 혼탁해도 우리는 선명하게 존재할 거라는 사실도.

홍승은 집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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