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샤론 크리치 지음, 김영진 옮김/비룡소(2009) 인디언 속담에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을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 다른 이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 후에야 이 말의 뜻을 깨달았다. 구태여 누군가의 신발을 신지 않아도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를 읽으면 누군가의 모카신을 신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딸이 가출한 엄마를 찾아가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조금 더 읽어보니 작품은 결국 딸이 엄마의 ‘모카신’을 신어보는 이야기였다. 엄마가 이동한 길을 따라가며 엄마가 보고 느낀 걸 헤아리는 여정을 담았지만 단순한 로드무비는 아니다. 주인공인 살라망카는 조부모와 함께 오하이오에서 출발해 아이다호까지 자동차로 미국을 횡단하는 머나먼 길에 나선다. 엄마의 생일날에 맞춰 아이다호에 도착해 엄마를 집으로 다시 데려오고 싶기 때문이다. 한편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지루한 시간에 살라망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친구 피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피비는 무슨 일이든 그럴싸하게 꾸며대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다. 피비에게 의심쩍고 수상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데 공상이 아니라 정말로 사건이 벌어진다. 집 앞에 이상한 쪽지가 자꾸 발견되더니, 갑자기 피비의 엄마가 사라진다. 피비는 엄마를 찾아왔던 이상한 청년, 패트리지 선생님과 커버데이 아줌마까지 의심하며 엄마에게 해코지를 했다고 주장한다. 빠르게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공포와 두려움 같은 자극적인 양념을 잔뜩 바른 것도 아닌데 중반으로 접어들면 읽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피비의 엄마가 사라진 사건과 살라망카가 엄마를 찾아가는 일은 별개인 듯 보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엄마가 납치되었다며 법석을 피우는 피비의 모습에서 살라망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그 일’을 말할 수 없지만 실은 살라망카 역시 억지를 부리는 피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살라망카는 피비의 모카신을 신으며 차례대로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는다. 아빠와 사귀는 줄 알고 미워했던 커버데이 아줌마의 모카신도 신어본다. 모카신을 신자 한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이어지고 또 다른 사람의 사연과 만난다.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자 피비는 끝끝내 부인하려 했던 ‘그 일’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피비의 모카신을 신었더니 피비만 이해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든 자기 문제, 자기 삶, 자기의 소소한 걱정거리만 생각하며 살아간단 말이지.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내 일정표에 맞춰 주기만을 바라지 않니?” 살라망카의 할머니가 해준 말이다. “만약 내가 엄마의 모카신을 신었다면…”, “만약 내가 아이의 모카신을 신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는 것, 타인은 물론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신어야 할 모카신이다. 청소년.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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