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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등록 2021-05-21 04:59수정 2021-05-21 09:59

정체성이 아닌 것: 존재 인식에 대한 자유, 나와 타자에 대한 자유
나탈리 하이니히 지음, 임지영 옮김/산지니·1만8000원

전통적으로 좌파는 여성, 장애인, 흑인, 이민자 등 소수자의 시민권과 ‘인정’을 위한 투쟁에서 ‘정체성’ 개념을 발견하고 정치적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우파 역시 ‘국가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서로 다른 정치적 용법 아래에서 정체성 개념에 혼란이 일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07년 ‘국가 정체성’을 선거의 핵심 이슈로 삼고, 집권 뒤 국가 정체성 부처를 만든 것이 한 사례다.

프랑스 출신 사회학자 나탈리 하이니히(66)는 2018년에 내놓은 짧은 저작 <정체성이 아닌 것>에서 “잘못 통용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된 개념을 웅덩이에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을 수단 삼아 정체성이 무엇과 관련되는지 성찰”을 시도한다. 지은이는 ‘아닌 것’을 제껴가는 방식으로 정체성 개념을 정리해나간다. 

나탈리 하이니히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 위키미디어 코먼스
나탈리 하이니히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선 지은이는 정체성을 고정된 현실이라고 보는 관점과 ‘본질주의에 대한 환상’으로 치부하는 관점 모두를 기각한다. 대신 정체성이라는 말 안에 “존재 자체”(라틴어 ipse)와 “동일하다”(라틴어 idem)는 모순되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나는 타인과 다른 유일한 존재지만, 어떤 특성을 함께하는 사회적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이 모순을 인정하려면 존재가 일차원적이고 유일하고 경험적인 실체라는 점을 부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개인(차이)과 사회(동일) 사이의 이원적인 모델만으론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원적 모델은 사회로부터 독립된 개인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개인과 사회의 대립 구도를 형성”할 뿐, 개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 위치한 맥락은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타인에 의한) 명명’, ‘(타인을 향한) 소개’, ‘(자신을 향한) 자기 인식’ 등 삼원적인 모델을 제안하고, 이 세 가지 순간을 구별할 때 정체성의 미묘한 작용 방식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스스로를 ‘프랑스인’, ‘소설가’, ‘동성애자’라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해지는” 서로 다른 세 순간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은이는 “정체성은 그것이 문제가 될 때에야 비로소 위기로서 드러난다”며, 이 세 순간의 불일치가 그 시작점이라고 짚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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