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책속으로
아버지는 제가 신분이 낮은 자와 사랑을 나누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나무라시는 것 같아요. 상대가 귀족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그러나 아버지가 나무라시는 것은 저의 잘못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아요. 사물의 이치를 깊이 생각해보시면 우리 인간은 모두 똑같은 육체를 지니고 똑같은 힘과 재주, 덕을 하느님에게서 받았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아버지는 망설이시는군요. 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시는 거예요. 그런 망설임은 버려주세요. 제발 가혹한 벌을 내려주세요. 저는 어떠한 애원도 하지 않겠어요. (‘네 번째 날 첫 번째 이야기’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스문다의 답변)
감염 초기에 남자든 여자든 겨드랑이에 사과나 달걀만한 종기가 생긴다. 이 종기는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팔다리에 납빛이나 검은 색의 반점이 수 없이 생긴다. 반점은 크기가 크면 수가 적고 크기가 작으면 수가 많아지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죽음의 전조였다. 페스트는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갔다. 환자를 잠시 보기만 해도 바짝 마른 장작이나 기름종이에 불이 옮겨 붙듯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금방 전염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숱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갔다. 시체들을 묻을 묘지는 만원이 되어 나중에는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마치 짐을 선적하듯이 시체들을 겹겹이 쌓아올리고 사이마다 흙을 조금씩 덮어씌우는 식이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페스트에 대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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