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침묵을 듣고 기록하는 일

등록 2021-05-07 05:00수정 2021-05-07 10:52

듣기 시간

김숨 지음/문학실험실·1만원

김숨(사진)은 최근 몇 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소설화에 주력해 왔다. 장편 <한 명>과 <흐르는 편지>, 증언 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가 그 결실들이다. 그가 새로 낸 중편소설 <듣기 시간>은 그런 작업의 연장이자, 영화로 치면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 증언을 책으로 엮는 팀에 참여한 ‘나’ 성윤주가 진주에 홀로 사는 피해 할머니 황수남을 찾아가 녹음기에 수남의 말을 담으려는 1997년 8월의 어느 하루를 배경으로 삼는다. 녹음기와 여섯 개의 녹음 테이프를 챙겨 왔지만, 수남 할머니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줄 모르고 테이프에는 성윤주의 질문들과 할머니의 침묵만이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할머니의 침묵 역시 엄연한 증언의 일부이니까.

“녹취록을 풀 때 그녀의 침묵도 문자에 담아 기록해야 한다. 그녀의 표정, 몸짓, 한숨, 눈빛, 얼굴빛, 시선, 눈동자의 떨림, 망설임, 눈물도… 그것들 역시 그녀의 발화되지 못한 말이므로.”

<듣기 시간>에서 성윤주는 할머니의 발화된 말보다는 발화되지 못한 말들을 더 많이 듣는다. 할머니는 완고하다 싶을 정도로 침묵을 고집하다가 이따금 맥락이 닿지 않는 말을 한두 마디씩 내놓는다. “다시 왔어….” “…왜 다시 왔을까?” “…요코.” “그 여자가 왔다지….” “…왜 왔대?” “왜… 이제야….” “말도 못한다며….” 뒷부분은 아마도 1997년 8월4일 ‘위안부’ 출신으로 캄보디아에 살다가 50여 년 만에 귀국한 훈 할머니를 가리킨 말들일 텐데, 그나마 더 이상 의미 있게 이어지지는 못한다. 그러고는 다시 감질나는 몇 마디가 발화되고(“데리고 갔어….” “날….” “누가 있어….” “여자….”), 마침내 암전.

할머니의 침묵만이 장애물인 것은 아니다. 따로 사는 할머니의 여동생은 할머니의 정신병원 입원 경력을 거론하며 구술 채록을 가로막고 나선다. 성윤주의, 그리고 작가 김숨의 ‘위안부’ 증언 채취는 이런 여러 겹의 난관을 뚫고 가까스로 이루어졌던 것. 소설 말미에서 성윤주가 환청처럼 듣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김숨의 이후 소설들로 이어졌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몸을 다 가져갔어…// 그래서… 몸이 없지…// 다 가져가서…// 죽지도 못해… 몸이 없어서…// 피는 나…// 피는 눈에서 나는 거니까…// 거기… 굴 속에…// 눈을 감아도 피가 흘러…”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위안부 기림일 주간 맞아 위안부 할머니 증언 소설 2권을 출간하는 김숨 작가(왼쪽부터)와 소설 주인공인 고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회의회 대표가 2018년 8월2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대협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위안부 기림일 주간 맞아 위안부 할머니 증언 소설 2권을 출간하는 김숨 작가(왼쪽부터)와 소설 주인공인 고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회의회 대표가 2018년 8월2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대협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