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양말과 기운 양말이 있습니다. 한참 놀다 보면 양말 발가락 쪽에 작은 구멍이 생깁니다. 운동화 속에 발가락이 삐집고 나와 꼼지락대는 날도 있습니다. 이른 오후, 햇살 내린 마루에서 할머니는 양말을 들고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바늘에 실을 끼워드리고는 했지요.
조곤조곤 할머니 이야기는 눈을 반짝이며 들었습니다. 유튜브도 스마트폰도 컴퓨터 게임도 없던 시절, 동화책도 흔치 않고, 추리소설 아니면 주말의 명화를 기다리던 날들이었더랬죠. 날이 궂어 딱지놀이나 구슬치기도, 술래잡기도 못하고 집에 갇힌 날이면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할머니를 조릅니다. 그렇게 식민지 조선 청년이 만주로 떠나 소식이 끊기고, 해방부터 전쟁 이후까지 오사카와 시모노세키, 목포와 강진을 넘나드는 가족사를 엿듣습니다. 지도가 너덜해지도록 펼쳐 들고 표시해가며 묻고 또 물어도 할머니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미국 뉴베리상을 받은 태 켈러 작가(6면)도 할머니한테 옛날 이야기를 들었겠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는 호랑이는, 곶감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토끼와 여우에게 속아넘어가기도 합니다. “범 이야기 수효가 많기로 조선만 한 데가 없으려니와”(육당 최남선) 중국 작가 루쉰은 조선인을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수많은 호랑이 이야기들을 거듭 고쳐 해준 까닭이겠지요.
우리는 확실히 잘 살게 되었지만 버리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고쳐 쓰며 얻게 될 것들(1면)을 놓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잠시 지내던 시절,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아 스스로 고쳐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낡은 자동차 조명을 교체하고 아이 자전거를 수리하면서, 취재하고 자료 읽고 기사 쓰며 느끼던 답답함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추억은 또 다른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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