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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후회 없는 삶을 향한 도서관

등록 2021-04-30 05:00수정 2021-04-30 09:17

[책&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인플루엔셜(2021)

가장 처음 본 시간여행 소설은 미래로의 이동이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미래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과거로의 여행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다. 주로 과거에 내린 어떤 선택을 달리해서 현재를 바꾸려는 시도를 다룬 이야기들이었다. 요새 유행하는 장르인 회귀물, 전생물, 빙의물, 평행우주물, 다 유사한 독자의 욕망을 담고 있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서 새 삶을 살려 한다. 어떤 시도는 성공하지만, 어떤 시도는 실패한다. 그렇지만 여행 이후와 이전의 삶은 분명히 달라진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모든 것을 포기한 여자의 결심으로 시작한다. 약혼자와 결혼 이틀 전에 파혼한 후로는 혼자, 오빠와는 멀어지고, 반려묘는 죽었다. 직장에서는 해고되고, 피아노 레슨을 하던 아이도 그만두고, 옆집 노인조차 도움을 거절한다. 서른다섯 살의 노라 시드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에스엔에스(SNS)의 댓글조차 없다. 그리하여 오늘 밤 노라는 삶을 끝내기로 한다. 죽음으로 들어선 후에 노라가 다다른 곳은 심야의 도서관, 거기서 학창 시절의 사서인 엘름 부인을 만난다. 엘름 부인은 이 도서관에 꽂힌 책들은 모두 노라가 선택할 수 있었던 삶이라고 말한다.

노라의 후회의 책 속에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가득했다. 노라는 행복할 수도 있었던 인생의 경로를 찾아본다. 결혼을 그대로 했다면, 수영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음악을 계속 했더라면. 하지만 그 어떤 삶에도 머무를 수는 없었다. 모든 길에는 상실과 후회가 있다. 이쯤 되면 독자도 깨닫는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없다.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멈추는 것뿐이다.

모든 책 속의 삶은 각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다중우주를 오가면서 노라는 진짜 자신을 만난다. 어떤 삶은 너무 완벽해서 거기 영원히 머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프랭크 캐프라의 영화 <멋진 인생>에서처럼 노라는 죽음을 결심하기 전의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게 된다. 자기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작가 매트 헤이그는 책 <살아야 할 이유>(책읽는수요일)에서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스물넷의 자신을 회상했다. 우울증이었다. 스페인 이비사 섬의 절벽 끝에 섰다가 돌아온 그는 살아서 책을 썼다. 그는 소설을 통해 절망에서 돌아와 생존하는 것의 의미를 타인에게 전하려 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그 결과물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곳, 사람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노라에게는 도서관이었다. 은유는 명확하다. 세상에서 거절당했다고 느꼈을 때, 문학은 내가 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책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모든 좋았던 여행이 그러했듯이,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져 있다. 똑같지만 변한 나로 살게 된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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