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 대안적 문명과 거버넌스
백영서 엮음, 하남석·앤드루 류·셰마오쑹 등 지음, 이종임 등 옮김/책과함께·1만8000원
전 지구를 휩쓴 코로나19 감염병의 대유행은 급기야 ‘체제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여러 나라들이 서로 다른 모델로 코로나19에 대응했는데, 사태가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방역에 대한 성적표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대유행의 시작점이면서도 방역에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이 있다. 22일 기준 중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9만547명, 사망자는 4636명에 그친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들은 초창기부터 쏟아지는 확진자와 사망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등 뚜렷한 실패를 경험했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서구 문명의 실패’를 거론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무시하는 권위주의’를 문제삼는 등 정치 체제와 거버넌스, 더 나아가 문명에 대한 논쟁이 피어올랐다.
지난달 28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주민들이 야시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우한은 확진자가 속출해 한때 도시 전체가 봉쇄됐었으나, 지난해 4월8일 봉쇄가 완전히 해제됐다. 연합뉴스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는 감염병 대유행을 겪은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톺아보는 중국 안팎의 글을 모은 책이다. 하남석(서울시립대), 박우(한성대), 조영남(서울대) 등 국내 중국 전문가와 아오양(베이징대), 원톄쥔(런민대) 등 중국 내부 학자, 주윈한(타이완대), 정융녠(홍콩중문대) 등 중국을 넘나드는 중국계 학자 등 12명이 참여했다. 백영서 세교연구소 이사장(연세대 명예교수)이 “가급적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각을 보여주는 중국 안팎의 글들을 거두어” 엮었다.
중국 내부의 목소리부터 들어보면, 방역 성공을 서구와 다른 ‘중국식 거버넌스’의 결과로 풀이하고 이를 문명 담론으로까지 가져가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인민전쟁’ 담론이 대표적이다. 인민전쟁은 “집단방어·집단통제의 양상을 띠고, 개인이나 가정 또는 지역 기초단위부터 각급 정부에 걸쳐 상하관통하는”(엮은이) 전면적 국가동원 체제로, 말하자면 20세기 중국 공산당이 제국주의와 전쟁하던 시기의 경험을 21세기 감염병에 맞서 다시 끌어낸 것이다. 이는 인권을 제한하는 ‘권위주의’라서 방역에 성공했다는 외부 비판에 대응한다. 중국의 대표 사상가로 꼽히는 왕후이는 지난해 “서방의 다수 논평자들은 중국 방역 과정을 ‘집권주의’(권위주의)의 공로로 돌릴 뿐 국가동원 체제하의 인민전쟁의 역량을 알아볼 길이 없다”고 쓰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두 시민이 양쯔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코로나19가 발원한 우한은 확진자가 속출해 한때 도시 전체가 봉쇄됐었으나, 지난해 4월8일 봉쇄가 완전히 해제됐다. 연합뉴스
책에서 이런 태도를 대변하는 것은 셰마오쑹(국가혁신과발전전략연구소)이다. 그는 중국은 서방과 달리 큰 사회와 큰 정부가 힘을 합하는 ‘거국체제’이기 때문에 방역에 성공했다며,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一視同仁)하는 중국 문명과 “환경에 적합한 것이 살아남는다”(適者生存)는 서방 문명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중국 문명, 유가 문명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일본, 한국, 싱가포르가 서방 국가들보다 더 잘 대처했다”고도 주장한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화되는 ‘탈중국’ 현상을 우려하는 아오양은, 오늘날 중국의 새로운 서사가 될 유가사상이 “서방의 자유주의와 완전히 배척되지 않는다”며 타협점을 찾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와 달리 권위주의 강화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는 크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발생 초창기 감염병 관련 소식과 여론을 입막음하는 데 급급했고, 그 뒤론 말 그대로 전쟁을 치르듯 개인의 권리를 무시한 방역 정책을 폈다.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고 압박받은 리원량 의사의 사례가 알려져 중국 내부에서도 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큐아르(QR)코드를 제시할 수 없어 차를 탈 수도, 숙박을 할 수도 없었다. 저장성에서는 ‘알리페이’로만 큐아르코드를 제시하도록 해, 알리페이가 없는 방문객이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해 9월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한가운데)은 중난산 중국 공정원 원사(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코로나19 방역에 큰 기여를 한 인물들에게 ‘인민영웅’ 훈장을 수여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코로나19 방역을 국가와 인민이 함께 총력을 동원하는 ‘인민전쟁’으로 인식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초창기 중국 시민들이 방송에 출연해 “정부가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장면. 책과함께 제공
자유주의 계열에 속하는 친후이(홍콩중문대)는 인민전쟁 담론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민주국가의 너그러운 방역은 효과가 좋지 못한 데 반해 중국의 ‘악랄한’ 격리 및 추적이 오히려 효과적”이었던 사실, 곧 ‘낮은 인권의 우위’ 명제를 좀더 냉철하게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에 자유와 생존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과연 감염병 사태를 전쟁으로 보는 것은 적절한가? 그는 제도의 우위를 따지기보다 각각의 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성찰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은 정상 상황에서 인권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을, 서방은 비상사태에서 드러난 결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방역이 성공한 데에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권위주의 체제, 향상된 국가 통치능력,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을 겪었던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고 짚는다. 단지 권위주의 체제여서가 아니라, “사회적 동원 능력과 이를 대중들의 불만을 무마하며 실행시킬 수 있는 국가의 힘은 중국 외에는 사실상 어떤 나라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에 주어진 숙제에 더 주목한다. 박우는 “코로나는 권위주의가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과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줬으나, 중국 정부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권위주의 강화라는 가장 익숙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중국 정부에서 “열이 나는데도 말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인민대중 속에 잠복한 계급의 적”이라고 써 붙인 공고문을 바라보고 있는 중국 시민의 모습. 중국 내부에서는 코로나19 방역을 국가와 인민이 함께 총력을 동원하는 ‘인민전쟁’으로 인식했다. 책과함께 제공
한 중국 누리꾼이 “할 수 없다”, “모르겠다”는 문구를 공유하고 있는 모습. 코로나19 사태 초창기 감염의 위험을 알렸던 리원량 의사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등) 위법활동을 중지할 수 있느냐”, “위법활동을 하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겠느냐”는 중국 당국의 질문에 “할 수 있다”, “알겠다”고 대답해야 했던 상황을 비판한, 일종의 인터넷 시위의 일환이었다. 책과함께 제공
조영남은 “중국 정부가 제대로 된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최종 통제 성공’에 얼마나 많은 인적 및 물적 대가를 지불했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단순히 확진자·사망자 숫자로 방역 성공을 재단할 수 없을뿐더러 이를 체제 논쟁으로 확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남석은 “개인의 자유를 앞세운 서구는 실패했고 공동체의 안전을 내세운 중국과 동아시아는 성공했다는 단순한 이분법 속에서는 방역의 민주적 토대나 사회적 지속가능성, 그 속에 내재된 노동과 보건에 대한 평등하고도 보편적인 접근을 놓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체제 간의 우위를 따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급속히 확대되는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막을지 등 좀 더 보편적인 과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엮은이 백영서는 “팬데믹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중국의 국가 거버넌스의 효율성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 자신들도 권력의 견제를 거버넌스 현대화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부단한 “상호 학습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