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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학살에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나

등록 2021-04-23 05:00수정 2021-04-23 17:00

4·3, 미국에 묻다
허호준 지음/선인·3만4000원

20세기 세계사적인 열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던 때 벌어진 제주 4·3은 여전히 한국 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대규모 희생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하고 2018년엔 문재인 대통령이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4·3의 성격과 희생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4·3, 미국에 묻다>를 쓴 허호준은 해방 정국 미군정 시절에 일어난 제주도민 학살 사건의 과정에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를 집요하게 묻고 캔다. 4·3이 일어난 1948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의 세력 확보를 위한 대립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다. 지정학적으로 특수한 위치에 있는 제주도를 놓고 미군정은 ‘이데올로기의 전장터’로 인식했다. 5월10일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의 투쟁은 남한에 친미 정부를 세우려던 미군정의 눈에는 가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미군정은 4·3 무장봉기의 배경에 북한과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있다고 봤다.

4·3에 미국과 미군이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저서나 논문이 처음은 아니다. 제주 지역 담당 기자로 <한겨레>에서 32년째 근무하며 4·3 문제를 천착해온 전문가 허호준은 기존 논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미국의 개입을 밝히기 위해 당시 언론보도를 발굴하고 4·3 당시 제주도에 근무한 미군 고문관들을 직접 만나 당시 미국이 진영 간의 대결장에서 제주를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지를 직접 들었다. 결국 “미국은 제주도민 학살에 대해 최소한 방조하거나 조장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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