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읽기 프로젝트 2년여 대장정 끝낸 저자·기획자·편집자·디자이너
‘북펀드’에 350여명 참여…“‘자본’ 곁에 두고 함께 읽어나가는 게 목표”
‘북펀드’에 350여명 참여…“‘자본’ 곁에 두고 함께 읽어나가는 게 목표”
고병권 지음/천년의상상·세트 12만원 두 달에 한 번씩, 철학자 고병권(50)의 책과 강연을 통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1권)을 함께 읽어나가는 프로젝트인 <북클럽 자본>이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펼친 대장정을 끝냈다. 2018년 8월 시리즈의 첫 권 <다시 자본을 읽자>가 나왔는데, 2년8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마지막 12권인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가 나온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씩 출간과 강연을 이어가는 등 출판계에서 유례없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북펀드’를 통해 350명이 넘는 독자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누구도 아닌 고병권이 풀이하는 <자본>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관심을 끌어왔다. 다른 출판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서체와 책 디자인도 큰 몫을 했다. 지난 14일 오전, 지은이 고병권, 기획자 선완규(천년의상상 대표), 편집자 남미은, 디자이너 심우진(산돌연구소장) 등 프로젝트의 주역 네 명이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이들은 “‘결과물이 (내게) 오면 그때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느슨하게 일하다보니 대장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로를 수평적으로 존중하고 리듬을 맞춰가다보니, “우리의 것이자 각자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느슨하게 일했다”는 말은, ‘능력자들의 여유’라기보다 네 명이 공유해온 어떤 공통된 태도를 드러낸다. 애초 <북클럽 자본>은 누군가의 뛰어난 ‘작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고병권은 “‘좋은 책’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책’을 써야 할 필요성”을 말하기도 했다. 누구도 ‘나의 것’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기획·저술·편집·디자인 등 모든 영역에서 이런 목적의식이 잘 배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단 디자인에서는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독자의 관심을 잡아끄는 데 충실한 것을 추구했다고 한다. 심우진은 “기획의 지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더욱 실험적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색깔을 배제하고 먹으로 흰색과 검은색만 쓴 것은 환경 문제를 생각해서다. 구불거리거나 뾰족한 제목 글씨는 한눈에 알아보기 쉽지 않은데, “책등을 모아놨을 때 한데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느낌”을 의도했다고 한다. 그래야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책장에서 책을 빼내도록 유도할 수 있고, “일단 책을 빼내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저자와 편집자가 책을 읽게 만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완간한 지은이 고병권(왼쪽 셋째), 기획자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왼쪽 둘째), 편집자 남미은(맨왼쪽), 디자이너 심우진 산돌연구소장(맨오른쪽)이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완간한 지은이 고병권(왼쪽 셋째), 기획자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왼쪽 둘째), 편집자 남미은(맨왼쪽), 디자이너 심우진 산돌연구소장(맨오른쪽)이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자본’ 읽기를 넘어, 이 시대에 발 딛고 겪기
<북클럽 자본> 집필을 마친 소회로, 고병권은 “그동안 <자본>을 ‘읽은’ 것은 열 번도 넘지만,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읽는 것과 겪는 것은 과연 어떻게 달랐을까.
고병권은 공장의 탄생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전쟁을 다룬 6권 <공포의 집>을 쓰면서, 마르크스가 당시 비참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 얼마나 천착했는지 새삼 느꼈던 일을 한 사례로 들었다. <자본> 제8장에서 마르크스는 ‘아동노동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등장하는 노동 현실에 대한 증언들을 구구절절 인용하는 등 “논리 전개만으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자본>의 한복판에 배치”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일하는 아홉살 조지 앨린스워스는 “아휴! 여긴 정말 더워요”라고 말했다. <자본> 영문판은 어법이나 발음상 표준 영어와는 거리가 먼 그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서 적고, 강세가 들어간 ‘is’를 이탤릭체로 처리했다. 또 노동하는 어린이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긴 주석을 달았다. 아예 목소리조차 전해지지 못한 “소녀들과 여성들의 처지를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단지 ‘잉여노동에 대한 자본의 갈망은 9살 어린이까지 하루 12시간 넘는 노동에 동원했다’는 사실과 논리를 전달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상품의 가치형성’은 어떤 비유나 논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노동자의 생명을 짜넣는 일’이라는 것을, 읽는 이의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도 새길 수 있도록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어떻게든 담아내려 했던 목소리들을 ‘겪고’ 보니, <자본>을 무어라 한마디로 말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다만 “자본주의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19세기 노동자의 현실과 오늘날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을 똑같이 취급할 수 없듯, 지금의 세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처럼 더욱 치열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앞으로 <자본>에 대해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욱 원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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