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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상이 왜 이래? 마르크스형에게 묻고 싶다면…

등록 2021-04-16 05:00수정 2021-04-16 10:09

‘자본’ 읽기 프로젝트 2년여 대장정 끝낸 저자·기획자·편집자·디자이너
‘북펀드’에 350여명 참여…“‘자본’ 곁에 두고 함께 읽어나가는 게 목표”

북클럽 자본 시리즈(전 12권)
고병권 지음/천년의상상·세트 12만원

두 달에 한 번씩, 철학자 고병권(50)의 책과 강연을 통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1권)을 함께 읽어나가는 프로젝트인 <북클럽 자본>이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펼친 대장정을 끝냈다. 2018년 8월 시리즈의 첫 권 <다시 자본을 읽자>가 나왔는데, 2년8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마지막 12권인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가 나온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씩 출간과 강연을 이어가는 등 출판계에서 유례없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북펀드’를 통해 350명이 넘는 독자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누구도 아닌 고병권이 풀이하는 <자본>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관심을 끌어왔다. 다른 출판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서체와 책 디자인도 큰 몫을 했다.

지난 14일 오전, 지은이 고병권, 기획자 선완규(천년의상상 대표), 편집자 남미은, 디자이너 심우진(산돌연구소장) 등 프로젝트의 주역 네 명이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이들은 “‘결과물이 (내게) 오면 그때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느슨하게 일하다보니 대장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로를 수평적으로 존중하고 리듬을 맞춰가다보니, “우리의 것이자 각자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느슨하게 일했다”는 말은, ‘능력자들의 여유’라기보다 네 명이 공유해온 어떤 공통된 태도를 드러낸다. 애초 <북클럽 자본>은 누군가의 뛰어난 ‘작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고병권은 “‘좋은 책’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책’을 써야 할 필요성”을 말하기도 했다. 누구도 ‘나의 것’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기획·저술·편집·디자인 등 모든 영역에서 이런 목적의식이 잘 배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단 디자인에서는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독자의 관심을 잡아끄는 데 충실한 것을 추구했다고 한다. 심우진은 “기획의 지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더욱 실험적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색깔을 배제하고 먹으로 흰색과 검은색만 쓴 것은 환경 문제를 생각해서다. 구불거리거나 뾰족한 제목 글씨는 한눈에 알아보기 쉽지 않은데, “책등을 모아놨을 때 한데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느낌”을 의도했다고 한다. 그래야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책장에서 책을 빼내도록 유도할 수 있고, “일단 책을 빼내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저자와 편집자가 책을 읽게 만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lt;북클럽 자본&gt; 시리즈를 완간한 지은이 고병권(왼쪽 셋째), 기획자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왼쪽 둘째), 편집자 남미은(맨왼쪽), 디자이너 심우진 산돌연구소장(맨오른쪽)이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완간한 지은이 고병권(왼쪽 셋째), 기획자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왼쪽 둘째), 편집자 남미은(맨왼쪽), 디자이너 심우진 산돌연구소장(맨오른쪽)이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집필과 편집에서의 대전제 역시 “쉽게 읽혀야 한다”였다. <자본>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북클럽 자본>은 <자본>의 흐름을 그대로 쫓아간다. 남미은은 “어려운 책인데다 12권으로 나눠서 해설하는 것이라, 지하철에서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쓰여져야 했고 구성도 단순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글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집필자를 조르고 귀찮게 만드는 일이 자기 일의 주된 몫이었다고 한다. 흐름이 깨지지 않도록 단락을 재단하고, 읽는 재미를 위해 적절한 이미지와 부록을 넣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며 이처럼 큰 일을 벌인 장본인인 선완규는 “‘고전을 자세하고 꼼꼼하게 읽는다’는 목표가 어떤 원칙으로 자리잡은 결과”라고 말했다. 책을 집필하는 것과 만드는 것, 여기에 더해 독자들이 읽는 것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순환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수평적이고 일상적인 관계”를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독자와 만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책 내용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반응을 듣는 것이 가장 기뻤다고 했다. 북펀드를 시작할 때 아직 나오지도 않은 열두 권의 책을 사고 열두 차례의 강의를 듣겠다고 한 독자가 60명가량이었고, 그 뒤 실제 강의에 꾸준히 참여한 사람들도 30여명쯤 됐다고 한다. 책 일부를 사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북펀드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350명이 넘었다.

고병권은 “완벽하게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잘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며, 150여년 전 마르크스가 <자본>을 노동자들에게 헌정할 때의 마음을 되새겼다. <북클럽 자본>은 “학문의 빛나는 정상”을 대신 올라갔다 온 뒤에 정상이 어떻다 말해주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힘겹게 오르려 하는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컴패니언북’이라는 것이다. “최대한 쉽게 쓰고, 최대한 자세히 쓰고, 최대한 깊이 읽어내고, 최대한 많이 읽어내자”는 것이 일관된 목표였다. 어떤 대목은 “너무 ‘오버’를 해서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평가할 정도로, 이 목표는 프로젝트 내내 그를 지배했다고 한다.

“고전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 예전에 마르크스를 읽었던 그리움 등 <자본>을 찾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역사적인 의미나 중요성 같은 건 다 빼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고민 때문에 <자본>을 찾는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반가웠어요. ‘알바’ 하는데 왜 두시간씩만 부리는지, 회사에서 주휴수당은 왜 슬쩍 빼먹고 안 주는지, 특성화고 친구들이 왜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스러져야 하는지…. ‘세상이 도대체 왜 이런지’ 고통스럽고 답답한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이요.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막연하게 실감만 하고 있을 사람들이 그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을 가장 바랐을 거예요.”
&lt;북클럽 자본&gt; 시리즈를 완간한 지은이 고병권(왼쪽 셋째), 기획자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왼쪽 둘째), 편집자 남미은(맨왼쪽), 디자이너 심우진 산돌연구소장(맨오른쪽)이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완간한 지은이 고병권(왼쪽 셋째), 기획자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왼쪽 둘째), 편집자 남미은(맨왼쪽), 디자이너 심우진 산돌연구소장(맨오른쪽)이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북클럽 자본>은 오는 6월부터 11월까지 전국의 동네책방들을 찾아다니며 독서모임과 저자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고병권은 “‘쓰는’ 시간이 끝나 ‘말할’ 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들을’ 시간이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단지 이 책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본>을 찾는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달라지지 않은’ 이 시대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실상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깨뜨리기 위해, 마르크스가 <자본>을 집필하며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매달렸던 태도가 그의 말 위에 겹쳤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자본’ 읽기를 넘어, 이 시대에 발 딛고 겪기

<북클럽 자본> 집필을 마친 소회로, 고병권은 “그동안 <자본>을 ‘읽은’ 것은 열 번도 넘지만,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읽는 것과 겪는 것은 과연 어떻게 달랐을까.

고병권은 공장의 탄생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전쟁을 다룬 6권 <공포의 집>을 쓰면서, 마르크스가 당시 비참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 얼마나 천착했는지 새삼 느꼈던 일을 한 사례로 들었다. <자본> 제8장에서 마르크스는 ‘아동노동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등장하는 노동 현실에 대한 증언들을 구구절절 인용하는 등 “논리 전개만으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자본>의 한복판에 배치”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일하는 아홉살 조지 앨린스워스는 “아휴! 여긴 정말 더워요”라고 말했다. <자본> 영문판은 어법이나 발음상 표준 영어와는 거리가 먼 그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서 적고, 강세가 들어간 ‘is’를 이탤릭체로 처리했다. 또 노동하는 어린이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긴 주석을 달았다. 아예 목소리조차 전해지지 못한 “소녀들과 여성들의 처지를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단지 ‘잉여노동에 대한 자본의 갈망은 9살 어린이까지 하루 12시간 넘는 노동에 동원했다’는 사실과 논리를 전달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상품의 가치형성’은 어떤 비유나 논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노동자의 생명을 짜넣는 일’이라는 것을, 읽는 이의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도 새길 수 있도록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어떻게든 담아내려 했던 목소리들을 ‘겪고’ 보니, <자본>을 무어라 한마디로 말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다만 “자본주의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19세기 노동자의 현실과 오늘날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을 똑같이 취급할 수 없듯, 지금의 세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처럼 더욱 치열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앞으로 <자본>에 대해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욱 원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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