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성원 옮김/시공사·1만9800원
“전염병만큼 세계적인 건강 문제다.” 흡연이나 마약 얘기가 아니다. 지난 2013년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당시 사무총장은 가정폭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여성 137명이 가정폭력으로 사망한다. 미국에선 군대에서 죽는 사람보다 집에서 죽는 여성이 3.3배 많다.(2000∼2006년) 여성인권이 형편없거나 총기를 허용하는 일부 국가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친밀한 남성에게 죽임을 당한 여성은 97명, 사나흘에 한 명씩 죽었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은 살릴 수 있었지만 끝내 죽임을 당한 여자들의 가정을 집요하게 ‘부검’해 가정폭력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가정 내 살인을 어떻게 ‘예견’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색한 책이다. 지은이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아메리칸대 교수는 피해자 유가족은 물론 가해자의 부모, 친구, 때로 가해자까지 집요하게 취재해 가정폭력의 ‘보편성’을 도출한다.
지은이는 ‘미셸’의 집으로 간다. 남편이 쏜 총에 자녀도, 자신도 잃은 여성이다. 10대 때 만난 남편은 온갖 통제로 아내의 공적 영역을 빼앗더니 급기야 총을 겨눴다. 남편의 폭력은 친정에까지 뻗쳤고, 미셸은 경찰에 신고해 남편을 가두고 접근금지명령까지 받아냈지만 시부모의 보석신청으로 헛수고가 됐다. 이 모든 상황이 미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의 폭력)은 시스템보다 더 강력하다.”
책에는 아내 살인을 ‘예견’하는 징후 22가지가 나온다. 목조름, 강제적 성관계, 임신 중 구타, 자살 위협 등이다. 가정폭력을 “가장 긴급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단언하는 지은이가 취재 끝에 얻은 불완전한 백신이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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