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들의 민주주의
레비 R.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갈무리·2만3000원
근대성은 문화와 자연,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인간 주체와 비인간 주체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적 구상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근대적 구상으로 인해서 주체인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비인간 객체들의 존재 자체를 도외시하게 됐다. 이런 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인간 객체들에 주목하는 ‘객체지향 존재론’ 또는 ‘사변적 존재론’이라는 철학적 운동이 국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라캉주의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로, 그레이엄 하먼과 함께 객체지향 철학운동을 이끌고 있는 지은이는 저서 <객체들의 민주주의>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서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 이론까지 다양한 이론을 함께 엮어,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 사이의 인위적인 간극을 용해하고 객체들의 실재로서의 동등성을 단언하는 비근대적인 ‘평평한 존재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객체지향 존재론으로서의 ‘평평한 존재자’는 네 가지 논제를 제안한다. ‘모든 객체는 물러서 있다’, ‘유일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객체들 사이의 어떤 종류의 관계도 여타 종류의 관계보다 특권적이지 않다’, ‘모든 규모에서 온갖 종류의 객체는 그 존재론적 지위가 동등하다’는 논제가 그것이다. 브라이언트의 이런 존재자론은 “존재한다는 점에서 모든 객체가 동등”하기에 존재자들 사이에 어떤 주어진 위계도 허용하지 않는 존재론적 평등주의로서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구성한다. 이런 평평한 존재론이라는 틀을 통해서 그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이론 및 철학 안에서 인간적이고 주관적이며 문화적인 것들에 대한 강박적인 집중을 줄이고 (…) 비인간 행위자들에 대한 더 올바른 이해를 계발하는” 활동을 독려한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기후변화의 잠재적으로 파국적인 결과가 우리 앞에 어렴풋이 나타나고 신기술이 우리의 삶과 모든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환함에 따라, 우리는 객체를 단지 의미를 전달하는 텍스트에 불과한 것으로 계속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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