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진형민 글, 주성희 그림/창비(2016) 실례일지 모르지만 진형민 작가는 한국의 앤드루 클레먼츠다. 이야기의 재미를 살리되 현실감을 놓치지 않으며 사회적 이슈를 즐겨 다룬다는 점에서 스타일이 겹친다. 물론 가는 방향은 다르다. 앤드루 클레먼츠의 <꼬마 사업가 그레그>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 근거를 둔다. 어릴 때부터 돈을 벌고 일하는 걸 장려한다. 진형민의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는 어른도 아이도 고단한 돈 버는 일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른은 돈, 아이는 공부가 만능인 세상에 산다. 십대가 돈을 벌겠다고 하면 “그럴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해라!” 혹은 “공부만 잘하면 엄마가 뭐든 사줄게”라는 말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돈 벌러’ 가야 한다면, 돈도 어른도 부재하다는 뜻이다. 5학년 초원이는 쉼 없이 마늘을 까서 푼돈을 버는 할머니와 산다. 엄마는 지방에 일하러 가고 없다. 상미 엄마는 일하느라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는 형편이다. 용수는 아빠와 사는데 요즘 강원도에서 일하느라 얼굴 보기 힘들다. 어른들은 쪼그만 게 무슨 돈이냐 싶지만 어린이도 돈은 필요하다. 용수는 축구부에 들고 싶은데 축구화가 없고 초원이는 마음껏 치킨을 먹고 싶고 상미는 예쁜 치마를 입고 싶다. 손을 벌릴 수 없으니 스스로 벌어야 한다. 처음 세 아이는 어렵게 빈 병을 모아 620원을 번다. 그런데 같은 반 최규도는 영어단어 하나 외울 때마다 엄마에게 200원을 받는다(아하, 똑같이 일해도 버는 돈에 차이가 있네!). 안 되겠다 싶어 아파트에 전단지 붙이는 일을 시작했다. 다리가 덜덜 떨리도록 계단을 오르내리며 문 앞에 전단지 500장을 붙였다. 한 장을 붙이는 데 30원이니 1만5천원을 받아야 하는데, 사장님이 애들이라고 5천원만 준다고 협박한다!(아하, 자기보다 약한 사람의 돈을 떼먹으며 돈을 버는구나!) 이날 저녁 집에 돌아온 초원이는 할머니에게 괜스레 화를 낸다. 포부도 당당하게 길바닥에 나섰지만, 돈을 벌려니 서러운 일투성이다. 어린이에게는 ‘구슬이 깨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잘살거나 못살거나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보호받는 시절이 끝나가는 신호다. 이런 순간을 만나면 잠시 멈추게 된다. 내 안에 있던 구슬들이 깨지고, 그 깨진 조각에 손이 베였던 아픔이 고스란히 살아나서다. 얼마큼 마음의 구슬이 깨진 세 명의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들이 본보기 삼아 보여준 대로 치사하고 못된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벌어야 할까, 조금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돈 주겠다는 사람의 졸병 노릇을 해야 할까, 손해를 감수하고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걸 선택해야 할까. 어렵사리 일이 끝난 후 상미는 “같이 돈 버는 거 힘든데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돈 버는 일은 힘든 게 맞다. 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오래 기분 좋게 할 수 있다. ‘벼락 거지’가 될까 불안해하는 세상에서 돈과 일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초등 4학년부터.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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