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루리 글·그림/ 문학동네·1만1500원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태어났다. 긴 코 대신 뿔을 가졌지만 코끼리들은 그를 따뜻하게 품어줬다. 어느덧 노든이 코끼리들과 살지, 야생에서 코뿔소로 살아갈지 결정할 때가 오자 할머니 코끼리가 용기를 주었다.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푸른 초원으로 나온 노든은 코뿔소 무리에서 아내를 만났다. 딸을 낳고 행복한 시간도 잠시, 불행이 덮쳤다. 뿔을 노린 인간 사냥꾼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었다. 붙잡힌 노든은 동물원에 갇혔다. 노든은 인간에 대한 복수심에 날뛰고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같은 코뿔소인 동물원 친구 앙가부마저 뿔 사냥꾼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노든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원에 불이 난다. 탈출하는 길에 노든은 오른쪽 눈을 다친 펭귄 치쿠를 만난다. 치쿠 역시 단짝 친구를 잃었는데 누가 낳았는지도 모르는 알을 품고 있었다. ‘정어리 눈곱만한 코뿔소’ ‘코끼리 코딱지만 한 펭귄’이라고 투닥거리며 둘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태어날 펭귄을 위해 바다를 향해 걷는다. 살기가 죽기보다 힘든 야생에서 목숨 걸고 알을 지키던 치쿠가 죽고, 어린 펭귄이 태어난다. 생김새부터 습성까지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노든과 어린 펭귄에겐 이제 서로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혼자 바다에 닿은 어린 펭귄은 자기가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적이 있었는지 깨닫는다. 오로지 자신을 향해 있던 많은 이의 긴긴밤을 끌어안고 ‘내일’이란 두려움을 견디며 살아내야 한다.
<긴긴밤>은 코끼리가 코뿔소를, 코뿔소가 펭귄을 품어 안으며 사랑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혼자인 게 두려운 어린 펭귄에게 노든은 할머니 코끼리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되돌려준다. ‘코뿔소가 키워낸 펭귄’이라는 특별함을 강조하며 “훌륭한 코뿔소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다”고 용기를 준다. 동물원과 야생을 오가는 긴 여정에서 나와 다르다고 터부시하지 않고, 두려움을 떨치고 내일로 나아가기를 응원해주는 문장들과 장면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초등 5학년 이상.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